[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꼴찌에게 희망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3일 03시 00분


엊그제 시골에 사는 쌍둥이 엄마가 하소연을 해왔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쌍둥이 아들이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둘의 평균점수를 합쳐도 60점이 안 된다면서 ‘꼴찌들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덧붙인 말은, 원래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는 앉아서 보지 말고 누워서 봐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느슨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중학교의 성적표를 받아 보면 놀라 뒤로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날 우연찮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나는 즉시 답을 보냈다. ‘○○ 선생님 알지요? 어제 그분 만났는데 중학생 손자가 이번에 꼴찌를 했대요. 그분이 어렸을 때는 꼴찌 하는 친구들의 엄마 아버지는 무슨 낙으로 살까, 그런 생각을 했다는데 막상 손자가 꼴찌를 하니 어라, 그냥 귀엽기만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금세 답이 왔다. ‘맞아요, 귀엽긴 해요. 그런데 제가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죄인 같아요. 그렇지만 선생님 손자도 꼴찌라니 완전 반전이에요. 크하하하.’

이렇게 해서 우리의 대화는 유쾌하게 끝을 맺었다. 공부는 못해도 꿈은 야무져서 쌍둥이 중 큰애는 프로게이머, 작은애는 KTX 기관사라고 한다기에 “공부 못해도 인성은 좋으니 기다려 봐요”라고 말했다. ○○ 선생도 손자에게 “야 인마, 너 공부는 꼴찌여도 친구들보다 잘하는 거 하나는 있어야지. 운동을 잘하든 악기를 잘하든 노래를 잘하든, 알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손자가 꼴찌를 해도 그저 귀엽기만 한 것은 대책 없는 할아버지의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나이에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창회에 나가 보면 공부 잘하던 극소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시험으로 정해지는 자리에 가 있지만 나머지는 정말 예측 불허다. 오히려 공부에 주눅 들었지만 저마다의 숨은 장점을 살려서 더 크게 성공하여 즐겁게 살고 있는 친구가 한둘이 아님을 보게 된다.

최근 더욱 다양해진 직업군 중에서 성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한정적이다. 더구나 꼴찌에게는 이제 올라갈 희망만 남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몫이다. 꼴찌에게도 얼마든지 기회와 희망이 있을 테니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
#쌍둥이 엄마#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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