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와 가까운 경험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문학동네)를 읽었을 때였다. 십여 년 전 아직 프로가 아니던 나는 당연한 말이지만 시야가 좁았다. 책은 좋은 충격이었다. 마루야마에 따르면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될까 말까다. 재미 또한 별로인 데다 알아준다는 보장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말 그대로 ‘직업’이었다. 기분 좋게 혼난 느낌이 들어 후련했다. 그처럼 산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계속 앨범과 책을 꾸역꾸역 내고 있으니 조금 그 아저씨 덕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마루야마의 책을 점점 멀리한 이유는 1943년생 작가의 말이 꼰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을 너무 쉽게 말하는 것 아닌가, 충고를 가장한 자기위안 아닌가, 산 속에서 글 하나만 보면서 편협해진 것은 당신 아닌가. 머리가 굵어지면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능력도 발달한다. 그러다 신작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바다출판사)를 보았다. 여전히 그는 서슬 퍼렜고 이번에는 명예퇴직한 일본의 60대 남성들을 사정없이 혼내고 있었다.
서문에서부터 그는 시골의 삶을 꿈꾸는 마음의 안일함을 까발린다. 그러다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진정 홀로서기를 한 사람입니까.” 작가는 오해 말라며 이렇게 이어간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에 의존하고, 직장에 의존하고, 사회에 의존하고, 국가에 의존하고, 가정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경제적 번영의 시대에 의존하면서 이럭저럭 수십 년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시골 생활에 대한 조금 까칠한 수필인 줄 알았는데 인생에 대한 몹시 까칠한 책이었다. 시골 생활에 대한 얘기도 없지는 않은데 이런 식이다. 시골에서 경찰은 당신이 죽은 후에야 도착할 가능성이 크니 무기용 창을 만들라든가, 침실에 쇠창살을 설치하라든가….
누군가는 꿈은 길게 꿀 수 있다면 좋다고 하지만 난 꿈은 빨리 깨질수록 좋다고 본다.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 어두운 부분을 샅샅이 봐야 제대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약이 되는 쓴소리는 귀해서 나는 이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계속 혼날 것 같다. 원제는 ‘시골에서 죽임당하지 않는 법’. 한국판 제목이 순화된 것 보면 어쩌면 여기가 더 다정한 나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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