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이 경남 통영을 찾아올 것이다. 매년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통영에서 보내기로 한 사람들, 그들이 정말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잠시 과거로 돌아가 통영에 살기 이전의 어느 여름날, 나의 휴가지 선택을 떠올려 보자. 복잡한 도시를 떠나 편안한 쉼이 가능한 조용한 시골에서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와 먹을거리, 새로운 경험을 만나고 싶었다. 통영을 찾는 많은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짜 통영, 다른 곳에선 만날 수 없는 통영의 아름다운 민낯을 보고 싶은 마음.
내가 살고 있는 통영에는 문화예술 자산이 풍부하다.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을 비롯해 수많은 문인이 나고 자랐고, 다양한 분야의 대표주자들이 통영의 문화예술을 꽃피웠다. 관광버스 타고 수산시장에 와서 회 한 접시 먹고, 바다만 보고 휙 가버리기엔 통영에는 볼거리가 정말 많다. 그런데 너무 흔하면 귀하지 않다고 했던가. 정작 통영은 문화예술 자산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표적 예술인이 바로 전통장인들이다. 한 도시에 10명이 넘게, 그것도 나전, 소반, 소목, 갓, 두석 등 분야별 장인들이 건재하고,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만 6명이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최근 전국적인 이슈가 된 사건, 추용호 소반장인의 150년 넘은 공방을 통영시가 도로를 내기 위해 강제 철거하려 한 것도 통영 전통예술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장인은 선대부터 내려온 공방이자 나고 자란 생가인 그곳을 지키기 위해 천막을 치고 20여 일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법적인 절차를 모두 거쳤다고는 하나 국가 무형문화재, 즉 통영 소반의 대를 잇는 단 한 명의 인간문화재를 거리로 내쫓은 것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문화재청과 정치권까지 가세한 전국적인 여론에 밀려 최근 통영시가 공방이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보존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 통영.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통영이 가진 독특한 문화와 역사, 그 지역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다. 그것이 겉으로는 초라해 보여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이어져온 면면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품은 사람과 공간이 가진 문화적 가치가 진짜 통영을 만들어낸 든든한 뿌리다. 이는 비단 통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를 만들기에 급급한 전국 곳곳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우리 문화예술 자산 모두의 이야기다. 수십억, 수백억 원을 쏟아부어 화려하게 지었지만 정작 담아야 할 콘텐츠는 부족해 텅 빈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생생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공간들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진짜 지역 문화의 출발점이다.
※필자(43)는 서울에서 광고회사, 잡지사를 거쳐 콘텐츠 기획사를 운영하다 경남 통영으로 이주해 출판사 ‘남해의봄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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