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하는 작년 봄, 난생처음 차를 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틀스의 모노 녹음 CD 전집을 끝없이 들었다. 왜 모노냐. 운전석에 앉으면 몸이 차 왼편에 쏠려 있으니까 스테레오로 녹음된 음악은 왼쪽 채널이 크게 왜곡된 상태로 들린다는 것이다. 장기하다운 발상이다. 비틀스가 물리면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음악가 루 리드를 들었다. 역시나 물리도록 들었다. 》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독막로의 음반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머리 모양은 루 리드를 닮아 있었다. 좀 전에 일어난 듯 약간은 퀭한 얼굴에 안경을 낀 그는 블루스 록 밴드 ‘로다운 30’의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사귀고 있는 가수 아이유에 관한 질문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최근 낸 장기하와 얼굴들(장얼) 4집(‘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에서 또 한 번 장기하식 한국적 랩이 빛을 발한다. 혹시 힙합을 좋아했나.
“중학교 때부터 록보다 힙합을 좋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랩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혁신적인 느낌이었다. N.W.A(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가 속했던 미국의 갱스터 랩 그룹)도 즐겨 들었다. 흑인들이 영어를 대하는 것처럼 나도 한국어를 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다. 흑인들은 평소에 말하듯이 랩을 하잖나. 한국 사람이 평소에 한국말 하는 운율을 그대로 랩으로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어에서, 내 말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한 리듬감을 지닌 것 같다.
“20대 초반, 밴드 ‘눈뜨고코베인’ 드러머로 활동할 때만 해도 내 노래로 먹고살겠단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연주를 연마해서 프로 세션 드러머로 먹고살려 했다. 내가 만든 음악은 인기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왼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꽉 들어가 주먹이 쥐어지는 증세가 와서 드럼을 포기했지만 그때 드럼을 팠던 영향이 남았다. 국내 대중음악 작곡가들 중에 내가 화성에 대한 지식은 진짜 없는 편이지만 리듬적으로는 꿀리지 않을 자신 있다.”
―산울림, 비틀스의 영향도 느껴진다.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 보면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란 가사가 있다. 내가 고스란히 본받고 싶어 노력하는 문장이다. 이번엔 초심을 가장 많이 생각한 음반이어서 더 비틀스, 산울림 생각이 많이 났다.”
―이번 앨범엔 노골적인 사랑 노래도 많다.
“사랑 노래란 왠지 오글거려서 애매하게 표현해 왔던 예전의 저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사랑 노래도 장얼 스타일로 개성 있게 풀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폴 매카트니의 ‘Silly Love Songs’ 가사를 보면 ‘사람들이 다 사랑 노래를 바보 같다고 하는데 사랑이 왜 바보 같은 거냐’고 항변한다.”
―그 사람(아이유)과의 사랑에 관한 얘기는 얼마나 담겼나.
“실제 에피소드를 그대로 가사에 담은 건 한 개도 없다. 신곡을 만들 때마다 그 친구에게 들려줬는데 ‘잘될 것 같다’ ‘좋다’는 얘기를 해줬다. 픽션이지만 신작 가사에 (연애가) 잘 안 풀리는 내용이 많아 사람들이 오해할까 걱정도 된다고 했더니 그 친구의 답이 명쾌했다. ‘작품은 작품일 뿐이므로 아무 상관 없다.’ 고마웠다. 그 친구가 올바른 판단, 따뜻한 마음을 지닌 현명한 사람이라는 점이 참 좋다. (둘이서) 정말 사이좋게, 안 좋은 게 단 한 가지도 없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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