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국민이 같은 모양의 대화창을 이용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좀 무섭지 않아? 그래서 ‘카톡(카카오톡)’ 안 쓰려고.” 얼마 전 기자의 지인은 “독과점은 위험하다”며 카톡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우려할 만큼 한국의 카톡 쏠림 현상은 유별나다. 카카오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카톡을 한 달에 한 번 이상 접속한 국내 이용자는 4117만 명에 달한다. 스마트폰 이용자의 대부분이 카톡을 쓰는 셈이다. 하루 동안 카톡으로 오가는 메시지는 80억 건에 카톡 이용자들은 하루 평균 55차례 카톡 창을 연다는 조사도 있다. 그렇다면, 카톡 없이 지내는 생활은 어떨까. 기자는 21일 카카오 계정을 없애고 모바일 메신저를 지웠다. 》
○ “지난 휴가 때 진작 탈퇴할 걸 그랬지”
‘(알수없음)님이 나갔습니다.’ 회사 부서의 그룹채팅방(단톡방)은 물론이고 수많은 공적, 사적 대화 창에서 기자의 ID가 사라졌다. 예상했던 불편이 이어졌다. 카톡 탈퇴는 사회적 ‘왕따’를 자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회사의 업무 관련 지시부터 회식 장소 알림까지 남들보다 늘 뒤늦게 알아 ‘뒷북’을 쳤다. 사적으로 오가는 상당수 정보 혹은 뒷담화가 차단됐다. 전화가 힘들거나 귀찮은 취재원들은 카톡으로 대화해왔다. 이들은 카톡을 없앴다는 말에 하나같이 “왜?”라며 의아해했다. 계정을 삭제한 탓에 게임이나 택시, 대리운전 등 카톡과 연동된 카카오의 서비스도 모두 이용할 수 없었다. 야근 후 택시를 잡을 땐 카카오택시가 간절했다. 어렵게 잡은 택시의 기사는 “콜택시는 카카오가 평정했고 이제 대리운전 업계도 머지않았다”고 촌평했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끊임없이 울려 공해처럼 느껴졌던 카톡 알람이 사라졌다. 모바일메신저가 발전하면서 노동과 휴식의 경계는 갈수록 무너지는 추세다. 마침 기자가 카톡을 삭제한 다음 날 신경민 의원이 퇴근 후 전화나 문자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업무를 지시할 수 없게 하는 이른바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문자와 전화가 살아있긴 했지만 늦은 시간 나와 무관한 단톡방의 대화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수혜처럼 느껴졌다. 지난 휴가 때 카톡을 탈퇴하지 못한 게 아쉬웠을 정도다.
○ 예상치 못한 소통의 변화들
단, 기자 본인보다는 주변의 불편이 컸다. 가족 단톡방에서 사라지자 부모님은 “무슨 일이냐”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했다. 회사 선배는 “업무 지시를 따로 내리려니 번거롭다”고 불평했다.
휴대전화로 글을 올린다는 방식은 문자메시지와 비슷하지만 소통의 느낌은 미묘하게 달랐다. 카톡 대신 휴대전화 문자를 보낸 친구는 “긴 얘기를 쓰기가 어색하고 불편하다”며 “카톡 대화가 더 자유롭고 은밀한 느낌”이라고 했다. “휴대전화 문자와 모바일메신저는 칠판과 공책 같은 차이가 있다”는 게 선배 기자의 평이다. 문자를 쓸 땐 의도치 않게 좀 더 격식을 갖췄다. 때로 어색한 내용이 오갈 땐 ‘라이언’이나 ‘무지’ 같은 카카오 친구들(이모티콘 캐릭터)이 간절했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용자들이 특정 SNS를 쓰는 과정에서 고유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카톡 등 SNS는 정보 교환뿐 아니라 정서 교류 방식을 다양하게 한다”고 했다.
기자는 조만간 다시 카카오 계정을 만들 것이다(계정 탈퇴 후 일주일이 지나야 재가입이 가능하다). 친구들이 내가 카톡에서 사라지자 자신의 휴대전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정도로, 카톡 탈퇴를 존재의 사라짐처럼 느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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