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丹陽)에 열일곱 먹은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사촌 형과 함께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표범이 형을 덮쳤다. 그런데 표범이란 놈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바람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에 아우는 표범을 보지도 못했다. 형의 비명 소리를 듣고서야 돌아보았는데, 표범이 형을 올라탄 모습이 마치 아이가 업혀 있는 것 같았다. 표범이 막 형의 왼쪽 어깨를 물었을 때 아우가 달려들어 맨손으로 표범의 목을 끌어안고 졸랐다. 표범이 으르렁거리며 앞발로 아우의 팔뚝을 할퀴자 팔뚝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흘렀다. 아우가 더욱더 힘을 주자 마침내 형이 표범의 아가리에서 빠져나왔다. 형이 나무하던 도끼를 휘둘러 표범을 쓰러뜨렸고 형제는 있는 힘을 다해 표범을 죽였다.
조선 후기 유학자 이윤영(李胤永·1714∼1759) 선생의 ‘단릉유고(丹陵遺稿)’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부친이 단양군수로 계실 때 따라갔다가 보고 들은 일이랍니다. 자신의 생사는 돌보지 않은 채 맹수에게 달려든 아우. 아우와 함께 표범을 때려잡은 형. 본능에서 나온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형제는 용감했다’입니다. 형제는 표범을 관가에 바쳤고 선생의 부친은 그들에게 곡식 몇 섬을 상으로 내리며 아울러 천한 신분도 면하게 해주었다는군요. 선생은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서 ‘표범가죽 옷에 대한 명(표구명·豹구銘)’이라는 제목으로 경계의 글을 지었습니다.
표범이 사람을 문 것은 표범이 사납기 때문이요(虎而서人, 虎之所以爲虐),
사람이 형을 구한 것은 사람으로서 덕을 세운 것이다(人而救兄, 人之所以立德).
표범은 사납기 때문에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그 고기를 먹는 것이다(惟虐也故, 衣其皮而食其肉).
만약 사람이 되어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는 표범의 적이라 할 것이다(若使人而有害人之心, 是虎之賊).
(여기서의 ‘호·虎’는 ‘반호·斑虎’ 즉 표범임)
이 명을 지은 이유는 첫째, 나무꾼 형제의 용감함과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고, 둘째,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차하게 모면하려고만 하고 이익을 보면 의리 따위는 잊어버리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옳지 않은 일을 보면서도 짐짓 외면하고 비겁해지는 우리 가슴이 표범 발톱에 할퀸 듯 뜨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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