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는 당나귀 한 마리 있을 법, 타지 않을 때는 종이처럼 접어가지고 다닌 신선을 그는 문밖으로 설명하였다 대문을 가장 먼저 열 백성을 위하여 한 곡조의 노래를 하듯 꿈처럼 들어맞는 그림으로 설명하였다 비치는 햇빛도 없이 그늘에 앉아있을 마음들이여. 빨리 시드는 마음을 받아들여라 누가 아름다운 것만 기억할 것인가 쓸모없는 기억은 언제나 슬프다 그렇다면 문 밖에 당나귀를 왜 매어놓았을까 가장 먼저 문을 열고 흰 당나귀에 앉는다 거꾸로 앉았으니 당나귀가 가려는 곳으로 그가 데려다 줄, 끝없이 펼쳐질 벼이삭들
붓춤이 인다. 이 신명을 어이 멈출 거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내 신선놀음을 한 번 해보느니, 오늘은 저 곤륜산 꼭대기에 사시는 신선들의 어머니 서왕모(西王母)가 3000년에 한 번 열린다는 복숭아를 먹는 그 반도(蟠桃)잔치에 가는 날이다.
문예 부흥이 불을 피웠던 영·정조 시대 어린 나이에 당대 문인화의 대가 강세황의 문하로 들어가 29세에 영조의 어진(御眞)을 그린 천재 화가 김홍도(1745∼?). 산수, 인물, 신선, 불화, 초충에서 민중들의 생활풍속까지 그의 붓길은 끝 간 데를 알 수 없었다. 오죽하면 스승 강세황이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 했을까.
이 ‘군선도 병풍’(국보 139호)은 너비 575.8cm의 8곡 병풍을 하나로 이어 반도회에 가는 열아홉 신선 무리를 서른한 살 때 그린 것이다. 외뿔소를 탄 노자(老子), 두건을 쓴 종리권(鍾離權), 붓을 든 문창(文昌), 흰 당나귀 거꾸로 탄 조국구(曹國舅), 낚싯대 든 한상자(韓湘子), 연꽃가지 흔드는 하선고(何仙姑), 꽃바구니 멘 마고(麻姑) 등이 시중드는 동자들과 약수(弱水)를 건너는 장면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다.
중국의 고사를 빌려다 해박한 지식과 높은 상상력으로 대작을 탄생시킨 것인데, 인물들의 옷 주름이며 저마다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이며 손에 든 물건들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이 인물 속에 김홍도 자신도 있을진저. 그래서 그를 화선((화,획)仙)이라 하지 않던가.
시인은 ‘거꾸로 앉았으니 당나귀가 가려는 곳으로/그가 데려다 줄, 끝없이 펼쳐질 벼이삭들’이라 했는데 우리도 저 붓춤 속에 들어가 한바탕 신선놀음에 취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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