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손예진에 대해 나는 사사건건 비판해 왔다. ‘무방비도시’란 영화에서 소매치기 조직 여두목으로 출연한 그녀를, 나는 영화 ‘싸움’에 출연했던 김태희와 더불어 ‘2008년 상반기 최악의 연기자’로 꼽기도 했다. 얼굴도 예쁘고, 머릿결도 최상이고, 발도 예쁜데 정작 연기는 길을 잃었다면서 말이다. 재난영화 ‘타워’(2012년)에 출연한 그녀를 두고는 “불지옥 속에서도 사랑스러운 뺨의 생채기 하나와 앙증맞은 검댕뿐이다. 캐릭터에 몰입하기보단 예쁜 척하느라 바쁘다”고 꼬집었다.
허진호 감독의 ‘외출’에서 유부남(배용준)과 잘못된 사랑에 빠지는 유부녀로 출연했을 때도 그녀는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다. 절박한 베드신에서도 그녀는 배용준의 복근만 쓰다듬을 뿐 리얼하고 과감한 노출을 감행하는 일이 없었다. 불륜 관계인 남녀가 “어떤 계절 좋아해요?”(남자) “봄이요”(여자) “저는 겨울 좋아해요”(남자) “저는 눈을 좋아해요”(여자) “봄에 눈이 내려야겠네요”(남자) 같은 한가하기 짝이 없는 대사나 주고받는 이 영화 속 손예진은 어디까지나 불륜녀가 아니라 1970년대 껌 광고에나 나올 법한 청순가련 여대생에 가까웠던 것이다.
왜 이런 극악무도한 비판을 늘어놓느냐 하면, 손예진이 출연한 최신작 ‘비밀은 없다’를 보고 나서 이런 나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23일 개봉해 20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에 그쳤으니 흥행엔 실패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매우 새롭고 깊고 특별한 시도를 한 작품으로 생각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를 그저 스릴러인 줄로만 알고 가서 보았다간 ‘멘털’이 붕괴되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십상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 남편(김주혁)을 돕던 아내(손예진)가 돌연 행방불명된 딸의 흔적을 쫓다 엄청난 진실과 마주한다는 장르적 줄거리를 외피처럼 둘렀지만, 이 영화의 속살은 외려 반(反)장르적이다. 뭐랄까. 이 영화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주류사회에 치받혀 질식해 가던 여성이 내면적 부활을 통해 주류사회에 핏빛 복수를 감행한다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것이다. 고립되고 학대받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심적 연대를 통해 고통을 나누며 처절하고도 통쾌한 복수를 한다는 점에선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과 맥이 닿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손예진은 자신의 영혼을 잔인하리만큼 난자해버리고 파고들면서 감정의 끝장을 본다. 내숭 떨지 않고 예쁜 척하지 않는 데다 울부짖으면서 얼굴이 못생겨지기까지 하는 그를 우리는 처음으로 선물 받게 되었다. 오! 이것은 그녀의 배우 선언인 것이다.
손예진이 껍데기를 벗고 자기 속으로 침잠하면서 예술가적 세계를 열었다면, 김민희는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워버림으로써 예술가가 되려는 배우인 것 같다.
단 한 번도 감명적인 연기를 보여준 적 없던 그녀가 내 마음에 ‘훅’ 들어왔던 건 영화 ‘화차’(2012년)를 통해서였다. 변영주 감독의 이 신경증적인 영화에 출연하면서 김민희는 아마도 여배우가 아닌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년)에 나온 것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출연해 입이 떡 벌어지는 동성애 장면을 자처한 것에서도 거장들과의 거듭된 작업을 통해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그녀의 욕망이 읽히는 것이다.
사실 김민희 정도 외모에, 김민희 정도 연기를 하는 여배우는 없지 않다. 하지만 많은 여배우가 몸 사리고 노출을 꺼리면서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찾고 이미지 관리하며 CF 따먹고 다닐 때, 적어도 김민희는 영화 속으로 자신을 냅다 던져버렸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진실이다. 여배우가 배우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인 것이다.
나는 홍상수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알려진 그녀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민희도, 홍상수도 자신들이 선택한 예술처럼 실제로 사는 것만이 예술가적 삶을 증명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자유롭고 솔직한 건 생각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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