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의 권리에 민감하고 인권의식이 투철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동권리나 인권을 배운 적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었다. ‘아이들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영국 어학연수 때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자주 보았는데 우리나라보다 장애인이 태어나는 비율이 높아서 그런가 보다 싶어 검색까지 해봤다. 나중에야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 잘되어서 그렇다는 걸 알고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이쪽 업계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라는 걸 알게 돼서 면접 전날 벼락치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이런 사람이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앉아 있으니 매일매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신입 직원일 때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서도 조목조목 따지려고 달려들던 내 모습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얼굴을 꽁꽁 싸매고 싶다. 나 스스로도 수긍이 가야 일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는 성격 탓에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씨름했던 문제가 바로 체벌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체벌을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보고 근절 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 나부터가 당시에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인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내 생각은 확 바뀌었다.
체벌 근절 캠페인 과정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크게 싸우고 난 뒤 홧김에 처음으로 손찌검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해야 교육이 되겠지’라는 심정이었지만 그 이후로 딸과의 대화가 사라져 며칠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딸에게 “진심으로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때린 일을 사과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후 딸의 태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거다. 나는 딸을 바꾼 것은 손찌검이 아니라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는 것을 대화 가운데 느낄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 경험도 매를 통해 배운 것은 없고, 부모님의 애달픈 마음과 눈물이 날 바꿨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한 어머니는 자신이 어릴 적에는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단한 여성운동의 결과 지금은 맞는 여성이 많이 줄었다며 “아이들이 잘못하면 어른에게 맞는 모습이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먼 훗날에는 무척 낯선 풍경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에 모든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날이 오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아이들의 권리에 민감하지 못하던 나도 여러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지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사람과 동물 사이에 위치하는 부모의 소유물 정도로 대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낀다. 육아예능을 보며 아이들을 강아지 보듯 귀여워만 한다거나, 카페에서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부모가 때려서라도 좀 조용히 시켜야 한다거나, 다 내쫓아 버리자는 이야기가 어딘가 무척 불편하다. 아이가 어른보다 분명 몸집이 작고 연약하지만 아이도 온전한 사람으로 누려야 할 권리까지 작은 것은 아닐 텐데, 아이의 작은 몸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숨어 있다는 걸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난 아직 멀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방향은 좀 바뀐 거 같다. 바뀐 방향으로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딘가 도달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방향을 바꾸게 된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함께, 더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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