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이 잘 되니 두 번째 작품 부담감이 만만치가 않네요.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무섭네요.”
지난해 여름, ‘위안부’ 소재를 다룬 창작 뮤지컬로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실험·예술성을 지향하는 소극장 공연)에서 만석 매진을 기록한 ‘컴포트 우먼’(Comfort Women)의 연출가 김현준은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처음 투자를 받고 내놓은 작품이 소극장이라지만 객석을 가득 메울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관객이 선정하는 최우수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후보에도 올라 기쁨 두 배.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연출가 및 안무가협회 가입허가를 받기도 했다.
“극장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이 와 있었어요.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를 경험한 유대인도 있었고 단순히 ‘컴포트 우먼’이라는 것에 호기심에 이끌려 온 백인들도 있었고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도 계셨죠.”
관객은 대부분 “충격 받았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그는 “‘위안부’ 존재 자체를 모르셨던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300페이지짜리 영문번역으로 ‘위안부’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자를 원하시는 분들께 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작년 12월 28일에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하지 않았나. 그때 마침 한국 가느라 비행기에 있어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미국서 기자들이 이 소식을 문자로 알려주더라. 그들이 공연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됐다는 걸 알고 뜻 깊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현준은 현재 ‘그린 카드’(Green Card·8월 12일 개막) 공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배우 겸 국내 공연 프로듀서 김수로와 손을 잡고 진행하고 있다. ‘컴포트 우먼’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다보니 두 번째 작품은 더 떨리는 게 당연지사. 내년 2월 뮤지컬 ‘인터뷰’ 개막도 앞두고 있는 그는 “이젠 실력을 증명해야 될 때다”라며 “내가 연출로서 신뢰를 얻어야 하는 작품은 ‘그린 카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발급되는 영주권을 뜻하기도 하는 ‘그린 카드’는 미국에서 살기 위해 현지인과 ‘위장 결혼’이라도 해서 영주권을 취득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은 이야기다. 그가 주변인들의 사례를 모아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많은 친구들이 비자를 받지 못해 꿈도 못 이루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막막한 경우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에게 ‘그린 카드’는 복권이나 다름없어요. 운이 매우 좋아야 받을 수 있거든요. 다들 귀한 자식들인데…. 솔직히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오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 나라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려고 미국에 온 거잖아요. 공부하고 접시 닦고 서빙하면서 돈 벌고,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왔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무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김현준은 무엇 때문에 머나먼 미국 땅을 밟게 됐을까. 어렸을 때 뮤지컬 ‘캣츠’를 보며 연출가를 꿈꿨던 그는 한국에서 뮤지컬, 연극을 만드는 게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 사 온 유명 뮤지컬이 대세였고 창작뮤지컬은 국내에서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줄이 없으면 공연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김현준은 작고한 전 성균관대 연극영화과 김용태 교수의 조언으로 뉴욕시립대 유학을 결심했다.
“5~6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창작공연 만들려면 공모전 같은 곳에 나가야 했어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한국 창작 뮤지컬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약간 ‘객기’도 섞여있는 패기인 것 같아요.(웃음) 아무튼 그때는 한국에서 한국 창작을 못 만들면 미국에서 만들어 한국에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왔어요. 새싹을 키우자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그가 미국에 오고나서 한국에서 창작뮤지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의 유학 생활은 어땠을까. 처음 2~3년간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았다고도 했다. 김현준은 “한국은 교육부터 취업까지 어느 정도 루트가 정해져 있는데 미국은 완전 ‘정글’이다. 내가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깐.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 졸업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공연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그 때부터 발품을 팔기 시작했어요. 글은 써 놨으니까 광고도 알아보고 공연장 대관도 알아보고요. 대관료가 비싸니까 얼굴에 ‘철판’깔고 가격을 막 깎았어요. (웃음) 사기도 당해보고 갈팡질팡도 하고 이런 경험이 쌓이니까 공연이 하나 올라가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컴포트 우먼’을 만들어 나가며 아시아인 배우들을 찾았다. 그는 “대놓고 아시아인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기란 어렵다. 대부분 작품의 주인공이 백인이고 전체 배역 중 아시아인은 2%도 안 된다. 또한 외국인 배우들은 아티스트 비자를 받지 못하면 갑작스럽게 공연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브로드웨이는 넘기 힘든 문턱이다.
“배우 오디션을 보는데 어떤 친구는 15년 경력인데 이력서가 딱 한 줄이더라고요. 대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앙상블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많아요. 그래서 아시아계 배우들은 ‘왕과 나’나 ‘미스 사이공’이 무대에 오르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죠. 유일하게 주·조연을 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그래서 생각한 게 아시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 뿐 아니라 제작자도요. 지금 브로드웨이에는 흑인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왜냐면 그들은 아티스트들끼리 힘을 뭉쳐서 하나의 공연 커뮤니티를 형성했거든요. 그렇게 점점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힘으로 브로드웨이까지 가게 된 거예요. 아시아인들도 그런 움직임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김현준은 미국 뮤지컬 시장과 한국 뮤지컬 시장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우리나라가 어느덧 뮤지컬 세계 3대 시장이 됐다. 한국의 뮤지컬 제작사들이 힘을 합친다면 브로드웨이에 한국 뮤지컬을 진출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제가 공부하고,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현지화 작업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보고 싶고 공감하는 이야기를 써야한다는 거죠. ‘한국’적인 것, ‘애국주의’적인 것은 배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충분히 한국 창작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올라가는 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요.”
연출가 김현준의 패기 넘치는 시도는 계속된다. 한국전쟁을 미국 군인의 시선으로 풀어낸 ‘시나브로’, 추리소설 ‘인형의 죽음’을 둘러싸고 소설가 유진킴과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 싱클레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인터뷰’, 1990년대 뉴욕에서 벌어진 한국과 중국 갱의 영역 다툼내용을 다룬 뮤지컬 ‘플러싱’까지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언젠간 한국에서도 연출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라이선스 공연에 잠식당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자 했으니 그 꿈은 꼭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다 김현준 연출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꿈을 말하기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