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이우환 화백을 만난 적이 있다. 소탈한 외모에 겸손함과 내면의 강한 예술가 정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권의 책, 만 가지 생각, 만 리 길을 다녀 본 다음에야 붓을 들어야 한다.” “화가도 지식인이다. 적당히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건 범죄다.” 한때 문학도를 꿈꾸었던 그의 화법은 철학적이고 시적이었다. 2년 전 주한 프랑스대사관저를 찾았을 때 ‘이우환 베르사유 궁전’ 도록을 보여 주며 흥분하던 대사 표정이 생생하다.
▷그의 1970년대 위작들이 화랑가에 나돈다는 얘기는 지난해부터 돌았다. 많은 미술인은 “실체 없는 위조설로 작가를 죽여 대한민국이 뭘 얻으려 하나”라는 작가의 항변에 동조했다. 하지만 위조 화가와 위작을 유통시킨 총책이 잡혔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감정 결과에 따라 압수 작품 13점은 위작 판정을 받았다.
▷정작 작가만 “위작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제 기자회견에서는 “나는 작가다. 나를 믿어라”만 반복한 것을 넘어 “경찰이 함정을 파 놓았다. 국과수 분석은 뭔지도 모르겠다. 법보다 작가의 감정이 우선”이라는 말까지 했다. 근거가 빠진 우격다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공동체 어느 구성원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서명도 판매 기록도 없는 작품들이 대형 화랑에서 점당 수십억 원에 거래되는 불투명한 한국 미술시장은 위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경찰이 작가의 예술성을 짓밟는 게 아니라 가짜의 피해를 없애려는 것인데 왜 이 화백은 자기를 공격한다는 식으로 본질을 흐리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가짜 그림이 유통된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림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화랑은 물론이고 화가들도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를 키워 준 한국 시장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면 ‘책임 없다’라고 호통칠 일이 아니라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게 도리”라는 충언도 있다. 이 화백은 14년 전 기자에게 “진정한 화가는 대중을 속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이제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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