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크: 대학의 미래를 뒤바꿀 학습 혁명/조너선 헤이버 지음/김형률 옮김/272쪽·1만3000원·돌베개
‘정의’ 강의로 ‘록 스타’ 같은 인기를 얻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수업 장면. ‘정의’ 강의 녹화물은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함께 만든 무크 제공 비영리 기업인 에덱스의 기반이 됐다. 동아일보DB
‘며칠간을 쏟아지는 로켓탄 공격 아래서 보냈다.(중략) 한 시간가량 끊기지 않는 인터넷을 이용해 숙제를 끝낼 수 있었고 남부끄럽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내게는 전형적인 한 주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학생이 대규모 공개 온라인 수업인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수강을 마친 후 강의를 한 세바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에게 보낸 e메일이다.
2011년 스탠퍼드대에서 시작된 무크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포함해 미국 유명 대학으로 빠르게 번졌다. 의지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미국 명문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무크에 세계는 열광했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있기 마련. 수강생의 중도 포기율이 90%가 넘고, 영어라는 언어 장벽이 있는 데다 인터넷 장비가 없는 오지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했다. 한 강의당 수강생이 수만 명에 달하다 보니 평가도 단답형, OX 등 쉽게 채점 가능한 문제 위주로 출제됐다. 댓글로는 깊이 있는 토론이 힘들었다.
논란이 격화될 때는 직접 경험해 보면 모든 게 명확해진다. 교육평가 분야에서 일해 온 저자는 행동에 나섰다. 철학 전공에 필요한 모든 수업을 단 1년 만에 무크로 이수하는 자칭 ‘자유학위 1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저자의 학부 전공은 화학이다). 그 과정을 블로그에 연재한 뒤 책으로 묶었다.
무크의 탄생부터 개발 과정과 장단점까지, ‘무크의 A부터 Z’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무크가 뭐지?”라고 묻는 이의 손에 쥐여주기에 딱 좋다.
‘자유학위 1년 프로젝트’ 결과, 저자는 미국철학협회 콘퍼런스의 칵테일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토론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무크의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저자는 강의에 대한 경험도 담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다룬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강의에 등장한 아킬레스와 ‘고대 그리스 영웅’ 강의에서 다룬 아킬레스가 비슷하지 않은 것을 저자가 궁금해하자 다른 수강생들은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쓸 당시 아킬레스에 대해 있었을 법한 자료의 역사적 의미를 알려줬다. 하지만 저자의 경험은 너무 조금 소개돼 아쉬움이 남는다.
무크의 등장으로 50년 이내에 전 세계에서 10개 대학만 살아남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무크가 대학 교육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온 것만은 분명하다. 동아일보DB온라인 강의의 한계를 무크 역시 극복하지는 못했다. 기존 대학을 대체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 대신 대안교육이나 학습자료로 활용될 여지는 높다. 몽골 고등학생인 바투식 먕간바야르가 MIT 무크를 상위 1% 성적으로 이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MIT에 합격할 수 있었다.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 직접 그를 지도해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층이 아닌 고학력 중장년층이 주요 수강생이라는 점은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서 무크의 역할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무크가 던진 화두다. 이 시대 대학이 제공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감수하고 치열한 경쟁 끝에 손에 쥔 졸업장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대학, 더 나아가 교육의 방식과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 건 무크가 이뤄낸 가장 강력한 성과가 아닐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