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기획이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영국의 호가스 출판사가 셰익스피어 희곡을 재해석해 다시 쓰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앤 타일러, 노벨문학상 후보로 해마다 언급되는 마거릿 애트우드,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 요 네스뵈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샤일록은 내 이름’은 제목에서 짐작되듯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변주한 소설이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하워드 제이컵슨이 이 작품을 맡았다.
배경은 현대,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부유한 예술품 수집가인 사이먼 스트룰로비치다. 유대인인 그는 딸 비어트리스가 유대인과 결혼하길 바라면서 딸의 연애에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연애하고 싶어 하는 비어트리스에게 아버지는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이야기는 스트룰로비치가 우연히 만난 샤일록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시작된다. 유대인인 샤일록의 딸 역시 기독교인 로렌초와 사랑의 도피를 한 터다(이 부분은 ‘베니스의 상인’ 그대로다). 비어트리스가 유대인이 아닌 남성 그래턴과 도주하고, 이 관계의 주선자인 당통에게 스톨로비치가 책임을 묻는 살 한 파운드를 요구하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 자신 유대인인 작가 제이컵슨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구원’의 문제를 소설에서 구현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딸의 연애로 인해 가슴의 고통을 받은 샤일록이 원했던 것은 가슴의 살 한 파운드이지만, 제이컵슨의 소설에서 스트룰로비치가 원하는 것은 유대인의 할례 의식을 상징하는 성기의 살 한 파운드이다. 물론 성기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베니스의 상인’이 그렇듯 이 소설 역시 얽혔던 이들이 화해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진다. 제이컵슨은 이 과정에서 욕망으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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