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설마 그런 음악이 존재하겠어?’ 할 때 당신들이 못 본 것일 뿐 여기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심해에서 실러캔스(어룡)가 발견된 것 같은 충격을 줄 만한 음악….”(잠비나이)
‘A Hermitage(은서·표지 사진)’. 3인조 밴드 잠비나이(이일우 김보미 심은용)의 새 앨범 제목이다. 전기기타, 거문고, 해금으로 구성된 이들은 국악기와 헤비메탈을 역사상 가장 창조적으로 결합한 팀이다.
시공간을 자욱하게 메우는 전기기타의 잔향. 둔중한 악곡, 출렁대는 변박을 타고 단속(斷續)되는 반복악절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플래시백처럼 듣는 이를 놀라게 한다. 귀곡성처럼 칭칭 조여 오는 해금, 타닥타닥 치닫는 거문고의 소리는 알맹이 쪽에 있다.
잠비나이는 매년 서너 달을 해외 순회공연으로 보낸다. 아이돌 위주의 케이팝이 상상 못한 세계, 서태지나 김수철도 못 간 미답의 경지로 간다. 2집 ‘은서’는 세계적인 인디 음반사 ‘벨라 유니언’(영국)을 통해 전 세계에 발매됐다. 세계 음악전문지들이 경쟁하듯 호평한다. 지난달 29일 잠비나이를 서울 도봉구 플랫폼창동61에서 만났다.
“중학교 때 밴드 세풀투라(브라질), 나인인치네일스(미국)가 원주민 음악이나 기계음과 밴드 사운드를 결합해내는 것을 봤어요. 국악은 지루한 음악, 옛 음악이란 편견, ‘국악기는 풍류방, 한옥에나 맞는 악기’란 속설을 깨부수려면 강렬한 사운드가 필요했죠.”(이일우)
리더 이일우는 중1 때 피리를, 중3 때 전기기타를 잡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동기(2001년 학번)인 김보미(해금), 심은용(거문고)과 의기투합해 2009년 만든 게 잠비나이다.
“초기엔 국악 연주에서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아파서 침을 맞으면서 연습했죠. 술대(거문고용 채)를 부딪쳐 내는 거친 소리들, 국악에선 지양하는 것들을 찾아 극대화했어요.”(심은용) “연주를 하면 살을 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해외로 다니는 걸 보니 보통 기(氣)가 아닌 셋이 모여 역마살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요.”(김보미)
이일우는 “(신작 첫 곡) ‘벽장’은 국악관현악단에 있을 때 겪은 성추행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쓴 곡”이라고 했다. ‘그대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위하여’(QR코드)는 환경파괴를 다뤘다. “‘억겁의 인내’는 임금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에 쓰이는 대취타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자기 인생의 영웅으로서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이일우) 마지막 곡 ‘그들은 말이 없다’는 세월호 얘기다. “중요한 순간에 말도 행동도 없었던 정부와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을 다루고 싶었어요.”(이일우)
작년, 재작년 공연 때 산 잠비나이 티셔츠를 입고 기차로, 비행기로 날아와 관람하거나 수줍게 팬레터를 전달하는 벽안의 남녀노소 팬이 많다.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사람에 따라 춤추거나 울거나 웃거나 키스를 하기도 하는 유럽 관객들의 반응이 재밌어요.”(잠비나이)
잠비나이는 4일 오전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났다. 해외 일정이 빼곡한 탓에 한국 공연은 11월 12일(플랫폼창동61)에야 연다.
“만일 양악과 국악이 나눠지는 일이 없었다면 기타든 거문고든 다 그냥 ‘악기’였을 거예요. 그들이 만나 만드는 음악, 그냥 ‘현대음악’으로 불러주세요.”(이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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