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년… 삶과 인간에 대해 물어야할 게 계속 생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4일 03시 00분


새 단편집 ‘중국식 룰렛’ 발간… 소설가 은희경

은희경 씨는 “소설집 원고를 정리하다가 내가 조금 변했다는 걸 느꼈다”면서 “어두운 실내 구석에 작고 하얀 빛의 웅덩이를 만들어 놓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은희경 씨는 “소설집 원고를 정리하다가 내가 조금 변했다는 걸 느꼈다”면서 “어두운 실내 구석에 작고 하얀 빛의 웅덩이를 만들어 놓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은희경 씨(57)가 소설가로 살아온 지 올해로 20년이 넘었다. 오랜 작가의 이력과 함께 소설집 5권, 장편 7권이 쌓였다. 여기에 새 소설집 ‘중국식 룰렛’(창비)이 더해졌다.

최근 만난 그에게 등단 20년이 지난 의미를 묻자 “‘이렇게 계속 써 가는 거구나, 지금껏 그래왔듯’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히려 주변에서 20년이나 썼는데 더 쓸 게 있느냐고 하더라. 난 인생과 인간에 대해서 계속 물어봐야 할 게 생기는데 말이다.”(웃음)

‘중국식 룰렛’에도 그 질문에 대한 작가의 소설적 탐색이 담겨 있다. 여섯 편의 단편은 작가가 마음먹고 고른 소재들이 바탕이 됐다. 술, 옷, 수첩, 신발, 가방, 사진, 책, 음악이다. 모두 일상에서 가까이 하는 친숙한 사물들이다.

그중에서도 표제작 ‘중국식 룰렛’이 도드라진다. ‘술’, 그것도 위스키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K의 술집에 모인 남자 넷이 라벨이 감춰진 위스키를 마시면서 서로의 삶에 대해 질문한다. 얼마쯤은 진실, 또 얼마쯤은 거짓인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행운과 불운이 엇갈리며 엮여 나가는 게 삶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낯선 소설을 써 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익숙한 ‘은희경표’ 소설과는 색깔이 다르다. “낯선 장소에서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장면…. 한번쯤 그려 보고 싶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로 인생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고.”

소설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살고자 해도 꽉 막혀 있는 인생인 젊은이, 가부장적 권위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은 심약한 중년 남성 등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작가가 위스키에 관심을 갖고 마셔 보고 위스키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쌓은 지식도 풍성하게 들어 있다.

‘불연속선’에선 바뀐 가방을 통해 고단한 삶 속에 깃든 허무함을, ‘정화된 밤’에선 음악을 통해 세속적인 인생에 대한 냉소를 던진다. 단편 ‘대용품’에선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소년이 실은 비밀이 있었으며, 성인이 돼서도 그 비밀이 감춰진 채 위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은희경표’ 시니컬함을 내보인다.

작가는 그럼에도 “변화가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인생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삶의 불연속선으로 인해 무언가 바뀔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식 룰렛’의 화자는 생의 불운 가운데서도 행운을 품으며, ‘불연속선’에서 자살 시도를 했던 화자가 삶에 대해 기대를 시작한다. 한국문학과 사회에 지극히 힘겨웠던 시간들을 지나면서 작가는 “이대로 가라앉으면 안 된다. 갇혀 있는 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 얘기들로 한 시절을 떠나보내고 싶은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 작가의 의지가 ‘중국식 룰렛’에 담겼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중국식 룰렛#은희경#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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