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세인의 관심 끌었던 450년 전의 타임캡슐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 옷과 부장품은 중히 여기면서
정작 본인은 14년간 냉장칸 신세… 미라는 시신 아닌 문화재
국립박물관에 ‘윤미라실’ 만들어 전시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게
그리도 사치스러운 소망인가
서울 성북구 인촌로 고려대 의대 본관 5층 해부학실습실 냉장 6번 칸. 당신이 있는 곳입니다. 며칠 전 비닐로 밀봉되어 있는 당신을 3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번에는 없던 곰팡이가 온몸에 퍼진 것 같아 가슴이 아팠는데, 급히 검사를 해보니 곰팡이는 아니더군요. 죄송한 마음이 날로 깊어갑니다. 이렇게 모셔서는 안 되는데….
‘윤미라.’ 2002년 9월 6일, 경기 파주시 교하면 당하리 파평 윤씨 종중 묘지에서 미라가 되어 나온 당신을 나는 그렇게 부릅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당신을 CT와 MRI로 검사할 때 차트에 실제로 썼던 이름입니다. 한 달 반쯤 뒤인 10월 24일, 당신을 부검한 이도 나였습니다.
당신은 알면 알수록 경이로웠습니다. 당대의 세도가였던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나, 23세가량의 꽃다운 나이에 사내아이를 낳다가 자궁 파열과 출혈로 숨졌습니다. 홑바지 허리끈에 ‘병인윤시월’이라는 한글 묵서를 남겨 1566년 겨울에 숨졌음을 귀띔했으며, 옷과 생활용품, 한글편지 등 103점이나 되는 귀중한 유품도 갖고 나왔습니다. 수수께끼와 힌트를 절묘하게 내미는 당신은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당신을 더 알고 싶었습니다. 학자들이 모였습니다. 당신의 몸을, 수의를, 유품을, 묘를 속속들이 조사했습니다. 소속 대학과 전공이 다른 53명의 학자들(중복)이 23편의 논문으로 두툼한 논문집 두 권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436년 만에 볕을 본 지 1년 2개월 뒤의 일입니다. 학제 간 연구, 융·복합 연구의 전범이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처럼 나도 뿌듯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당신은 다만 한 구의 미라에 불과했지만,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당신은 ‘윤미라’라는 꽃이 되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당신은 집안도 보존 상태도 좋고, 아이를 배에 품고 숨진 미라도 세계에서 당신이 유일합니다. 학자들은 현대의학을 총동원해 당신의 사망 원인과 나이, 피부 탄력과 시체비누화(시랍) 현상까지 규명해 냈습니다. 한국 회곽묘에서 미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증명하게 된 것도 당신 덕분이었습니다. 종중이 시신을 기증한 것도 드문 일입니다. 당신의 ‘스펙’은 아주 매력적이고, 스토리텔링까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곧 내 곁을 떠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내 자부심도 참담히 무너졌습니다. 당신이 14년 동안이나 좁고 어두운 냉장칸을 못 떠나고 있으니까요. ‘전례가 없다’ ‘규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당신을 모셔 가려는 박물관이 한 곳도 없습니다. 전례가 없으면 만들고, 규정이 모호하면 바로 세우면 되는 것 아닌가요. 창조와 창의는 다 어디로 갔나요. 당신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옷가지는 문화재라고 애지중지하면서, 정작 당신은 발가벗겨 놓고 홀대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 행정과 문화의 수준입니다. 허가받은 도굴꾼과 뭐가 다른가요. 사람이 옷보다는 아름답지 않습니까.
지금 당신을 돌보고 있는 엄창섭 고려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말합니다. “한국의 미라는 인공으로 만드는 이집트 미라와는 다르다. 자연의 선물이다. 자연이 만들고 간직하다 우리에게 넘겨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맞습니다. 당신은 시신이 아닙니다. 귀중한 문화재이자 공공재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좀 더 쾌적한 환경 속에 ‘윤미라의 방’을 만들어 당신을 밀랍인형으로 복원하고, 발굴 경위와 가계도, 관에서 나온 옷들, 한글편지 번역본, 3차원 신체 영상 등을 함께 전시하면 박물관의 명소가 될 것입니다. 국립박물관에 그런 방 하나 만드는 게 그리도 힘든가요. 1991년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5300년 전의 미라 ‘냉동인간 외치’는 지금도 3년에 한 번씩 전문가들에게 공개되고, 매년 한두 편씩 논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소중한 타임캡슐, 미라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달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음에 만날 땐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는 당신을 배웅하고 싶습니다. 그날이 늦어진다면? 호기심만 천국인 경박한 대한민국에는 계속 분노하겠지만, 그래도 기다려 보겠습니다. 나도 당신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으니까요. 아, 흥분을 하다 보니 내 소개를 깜빡했네요. 나는 고려대 의대 병리학교실 김한겸 교수입니다.
※이 칼럼은 김한겸 교수와의 인터뷰와 주변 취재 등을 거쳐 김 교수가 미라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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