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옥중 독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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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걱정 없어요. 다만 책이나 좀 있으면 하는데.” 1928년 겨울 중국 뤼순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단재 신채호가 면회 온 이관용(1894∼1933)에게 한 말이다. 단재는 H G 웰스의 ‘세계문화사’와 ‘에스페란토 문전(文典)’ 차입을 부탁하면서 육당 최남선에게 말했던 백호 윤휴의 ‘윤백호집’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도 절로 떠오른다.

백범 김구가 ‘백범일지’에서 수감 생활을 회고하며 말했다.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는 격으로, 내 죽을 날이 당할 때까지 글이나 실컷 보리라 하고 손에서 책을 놓을 사이 없이 열심히 글을 읽었다. 감리서 직원들이 종종 와서 내가 신서적에 열심 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좋아하는 빛을 보였다.”

우남 이승만은 1899년부터 1904년까지 5년 7개월간 긴 옥살이를 하면서 선교사들이 차입해 준 책을 바탕으로 이 땅에서 최초라 할 옥중 도서실을 열었다. 스스로도 공부하기 위해서였지만 문맹과 무학자가 다수인 수감자들을 독서를 통해 깨우치려는 옥중 계몽운동이기도 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수감 중 이희호 여사에게 도서 차입을 부탁하거나 가족에게 권하는 책을 적은 서신을 자주 보냈다. 18번째 서신에서 차입을 부탁한 책들 중 일부는 앙드레 모루아의 ‘미국사’, 야스퍼스의 ‘니체와 기독교’, 한스 켈젠의 ‘민주주의와 철학 종교 경제’, 중국 역사서 ‘십팔사략’,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이다. 역사, 철학, 문학, 사회과학에 걸친 폭넓은 지적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독서는 수감 생활의 고통도 잠시나마 잊게 하는 효능을 지녔나 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버트런드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반전(反戰)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했다. 그는 수감 중 리턴 스트레이치의 ‘빅토리아 시대의 명사(名士)들’을 읽다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감방이 떠나갈 듯 웃었다. 간수가 러셀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곳이 처벌을 받는 곳임을 잊지 마시오.”

책을 읽지 않는 핑계는 넘쳐난다. “진정 책을 읽고 싶다면 사막에서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서도 할 수 있고, 나무꾼이나 목동이 되어서도 할 수 있다. 뜻이 없다면 조용한 시골이나 신선이 사는 섬이라 할지라도 책읽기에 적당치 않을 것이다.” 청나라 증국번(曾國藩)의 말과 옥중 독서인들의 진실한 뜻이 핑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신채호#이관용#백범일지#수감#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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