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먹방과 맛집, 셰프들의 퍼포먼스가 요란한 지금, 우리에게 음식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봐야 할 때다. 최근 사찰 요리를 담은 책을 펴낸 우관 스님을 만나 식재료에 대한 남다른 시선으로 자연의 레시피에서 정성 들여 만드는 천연 양념까지, 어느 것 하나 수행 아닌 것이 없는 스님의 음식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 요리책 제목이 ‘보리일미’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보리(菩提)란 산스크리트어의 Boddhi를 음역한 말입니다. ‘최상의 진리를 깨우친 지혜의 깨달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일미(一味)는 ‘한 맛’으로 ‘한’은 모든 것을 총섭하는 큰 한 가지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보리일미는 ‘깨달음의 한 맛’입니다. 진흙탕 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세상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 한 맛이 되듯이, 모든 맛을 아우르는 깨달음의 한 맛이야말로 제 음식이 추구하는 최상의 맛입니다.
▼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그 계절 절 주변 산나물의 순과 줄기, 꽃, 열매 등의 식재료를 채취하여 음식을 만드시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슐랭 별 셋을 받은 훌륭한 레스토랑들이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며 그날의 식재료를 바로 채취해 음식을 만든다고 하는 얘기도 생각났고요. 약 줄 일도 거름 줄 일도 없으니, 나의 농사는 게으른 농사라 해야겠네요(웃음). 자연 속에 사니, 주변에 지천인 식재료를 제 순일 때 거두어 음식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수행자라면 응당 내 음식은 내가 만들어야 하며, 그것 또한 본인의 수행이지요.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고, 거두고 다듬고 만드는 이 모든 것에 수행 아닌 것이 없습니다.
▼ 책을 읽고 제철 식재료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제철 식재료란 토종 씨앗 그대로 생명력을 품고 있는 자연의 재료를 말합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떠오르듯, 때가 되면 발아하여 그 계절의 해와 바람, 눈, 비를 맞고 절로 자라는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이렇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 집 밥상에 올라오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제철이든 아니든 누가 만든 것인지, 어떻게 키운 것인지, 제품의 성분은 무엇인지 헤아려 인식한다면 건강한 식재료를 밥상에 올릴 수 있습니다.
▼ 이처럼 불법으로 풀어낸 사찰 음식은 자연히 동양 철학을 담고 있으니, 맛과 멋만 이야기하는 서양 요리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철학이 있습니다. 저는 수행자이니 불법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교류를 통해 생명성을 증장시킵니다. 음식을 만들겠다고 뿌리째 거두면 생명을 죽이는 일이 되지만, 솎아주듯 채취하면 남은 열매의 번식을 도와 그 자연 또한 생명이 증장되니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상생의 음식인 셈이지요.
▼ 남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식재료에 대한 스님의 애정이 느껴집니다. 자투리 채소나, 솎아내 버리는 식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여럿 있더군요. 불교에서는 흐르는 물도 아껴 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끼는 마음으로 귀하게 여기면 모두 쓰임이 있는 식재료가 됩니다. 상품 가치 없다고 솎아내 버리는 어린 수박이나 고구마 잎 등으로 저는 음식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맛있습니다. 해보지 않아, 먹어보지 않아, 때론 못 보고 지나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것뿐이랍니다.
▼ 음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먹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들면 맛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위한 음식이 만들어집니다. 레시피가 뭐가 필요할까요. 음식을 마음으로 하면 아픈 환자에게는 소화에 이로운 음식을, 어린아이나 어르신들에게는 자극적이지 않고 입맛 살리는 음식을 만들게 됩니다. 음식에는 사람의 마음과 기운, 소리가 작동합니다. 실제로 저는 부처님께 올리는 팥죽을 끓일 때 어떻게 해야 맛있게 끓일 수 있을까 궁리하며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웁니다. 그러면 정말 맛있는 팥죽이 만들어집니다. 상대방을 기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드니 저의 기운이 온전하게 가동되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스님께서 양로원에서 일하시던 시절, 매 끼니마다 꼭 맞게 밥을 하여 찬밥을 없애셨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경기도 화성의 자재정사 양로원에서 할머니와 노스님들을 위해 원주 소임을 자청하던 시절 이야기를 말씀하시는군요. 절 안의 내무부 장관이라 할 수 있는 ‘원주’ 소임 2년 동안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꼭 100명분의 밥을 지어 찬밥을 없앴습니다. 단 한 번도 밥을 남겨 다음 끼니에 낸 일이 없었지요. 그것은 수행자로서 공양하는 이들을 향한 지극한 마음으로 소임을 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찬밥 드시는 일을 되도록 없애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 음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을 듯합니다. 중으로서 요리책을 쓴다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통해 많은 대중과 교류하면서 나만의 메시지를 담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더군요. 지금의 음식들은 하나같이 모양을 내고 맛을 추구하는 듯합니다. 사찰 음식만은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식(食)은 몸을 지탱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함인데, 모양과 맛만 좇아 흘러가는 것 같아 그 흐름에서 벗어나 나만의 사찰 음식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의 사찰 음식이 많은 이들과 인연이 된다면 수행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의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태평해지도록 사찰 음식과 수행하는 삶도 나누고 공유하는 수행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우관 스님께 음식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곤 합니다. 미슐랭 별 셋 레스토랑 라스트랑스(L’Astrance)의 프랑스 천재 요리사 바르보는 우관 스님의 강의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된장국에 넣을 애호박을 칼로 자르지 않고 나무 수저로 툭툭 자르고, 채소를 손으로 끊어 넣는 걸 보고 왜 칼을 쓰지 않냐고 스님께 물었더니, 생명이 상하지 않도록 칼을 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음식은 요리를 통해서 제2의 삶이 부여된다는 제 음식 철학과 스님의 음식하시는 모습에서 서로가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식재료를 귀하게 여기며 마음을 담아 먹는 이를 배려하며 만드는 우관 스님의 소박하지만 조화로운 음식. 깨달음의 한 맛을 추구하는 스님의 보리일미는 내가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맛있는 음식, 멋진 플레이팅, 강한 퍼포먼스로 멋을 낸 음식들이 넘치는 세상에 조용한 울림이 됩니다.
우관 스님의 여름 레시피
보리수 발효액 발효액은 보통 주재료와 설탕을 1:1 동량으로 쓰는데, 저는 1: 0.7의 비율로 설탕을 덜 사용합니다. 발효액을 설탕 대신 사용하거나 음료로 활용하거나, 양념으로 쓰려면 최소 3년 이상 숙성시켜야 합니다. 미생물이 살아 있어 열을 가하는 음식보다 생채 요리에 사용하면 더 좋습니다. Ingredients 보리수 열매 10kg, 설탕 7~8kg How to make 보리수 열매 10kg에 설탕 3~4kg을 넣어 버무린다. 실온에서 3~4일 정도 1차 발효시키면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이때 설탕 3kg을 더 넣고 버무려 항아리에 담고 그 위에 설탕 1kg을 덮어 면포로 입구를 봉한 다음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보름에 한 번 정도 저어주면 발효가 더 잘된다. 건더기는 일 년 후에 분리하여 발효액만 항아리에 담아 2차 발효한다. 모든 발효액을 만드는 방법은 이와 같다.
여주고추장조림 여름이 되면 마하연 텃밭에도 싱그러운 여주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천연 인슐린이라 불리는 여주는 당뇨에 좋고, 여름 기력 회복에도 좋은 식재료입니다. 몸을 이롭게 해주니 쓴맛도 달다 생각하고 고맙게 먹습니다. Ingredients 여주 400g, 포도씨오일 · 조청 2큰술씩, 고운 소금 약간, 고추장 · 들기름 1큰술씩, 통깨 1작은술 How to make 1 여주는 깨끗이 씻어 0.3cm 두께로 잘라둔다. 2 팬에 포도씨오일과 고운 소금, 여주를 넣고 튀기듯이 볶는다. 3 볶은 여주에 고추장과 조청을 넣고 약불에서 20분 정도 조린다. 4 여주가 조려지면 불을 끄고 들기름과 통깨를 부수어 넣고 그릇에 담아 낸다.
대궁상추물김치 여름 상추는 진통, 수면 효과가 있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도 좋습니다. 성질이 찬 채소라 몸의 열을 내리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쓴맛을 내는 우윳빛 즙은 소화를 돕고 신경을 안정시켜주니 여름 상추는 약처럼 그 계절에 물리도록 먹습니다. 줄기 부분인 대궁도 버리지 않고 먹지요. 이 부분은 상추가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성분이 강화되어 있기 때문에, 생것으로 먹으면 너무 자극적이라 전이나 김치로 먹습니다. Ingredients 대궁상추 300g, 감자 2개, 물 3컵, 풋고추 · 홍고추 1개씩, 양념(배즙 1컵, 생강즙 1큰술, 집간장 · 고춧가루 5큰술씩), 고운 소금 적당량 How to make 1 대궁상추는 고갱이 부분에 칼집을 넣어 반으로 가른다. 2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갈아 물 3컵을 붓고 한소끔 끓여 묽은 죽을 쑨다. 3 풋고추와 홍고추는 꼭지를 제거하고 어슷하게 썬다. 4 ②와 배즙, 생강즙, 집간장,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을 만든다. 5 대궁상추와 고추를 섞어 통에 담고 ④의 양념을 부어 골고루 섞으면서 고운 소금으로 김칫국물의 간을 맞춘 다음 실온에서 반나절 동안 익히고 냉장 보관한다.
기획 · 여성동아 | 글 · 이호선 콘텐츠 제작소 내내봄 | 사진 · 문덕관 램프 스튜디오 디자인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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