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의 계절이 마침내 돌아왔군요. 서양음악에서 비를 묘사하거나 제목으로 삼은 작품은 의외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쇼팽의 전주곡 15번 ‘빗방울’입니다만, 이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니라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합니다. 쇼팽이 의도한 제목도 아니죠. 이 곡 외에 드뷔시가 베를렌의 시에 곡을 붙인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같은 가곡들도 있습니다만, 널리 사랑받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대신 빗방울을 바라보며 제가 먼저 떠올리는 음악작품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비의 노래’입니다. 3악장 시작 부분의 선율이 그의 가곡 ‘비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만, 음울한 3악장뿐 아니라 소박하고 온화한 1악장 선율도 ‘비’의 느낌을 짙게 전해 줍니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창문을 타고 흐르는 듯한 나직한 피아노의 화음 위로 바이올린 독주가 가만히 말을 걸듯 또렷한 주제를 시작합니다.
이 곡은 요즘 다시 인기라는 LP 음반으로 들어도 기분이 그만일 듯하군요. 타닥타닥 하는 잡음이 섞여도 빗소리와 어울려 오히려 느낌이 좋을 것 같고요, 부엌에서 김치전의 고소한 냄새가 살살 풍겨 온다면 더욱 좋은 느낌일 듯합니다. (음?)
브람스는 이 곡을 여름 휴가지인 오스트리아 남부 호숫가의 푀르차흐 마을에서 썼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작곡한 교향곡 2번은 호숫가의 노을과 함께한 여유로운 마음이 충만합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곳에서 작곡했습니다. 9일 성시연 지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슐로모 민츠 협연으로 연주할 곡목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곧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휴가 계획들은 세우셨는지요. 요즘은 휴가 계획조차 “이번 기회에 스트레스를 몇 % 줄인 다음에 다시 심기일전하여…” 또는 “몇 군데 도시에서 몇 개 명소를 보고…” 식으로 ‘목표 지향’적으로 세우는 분이 많더군요. 그래도 휴가만큼은 모든 부담을 벗어던지고 시원하게 크고 작은 행복만을 찾아내는 기회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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