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벌을 준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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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받아야 할 죄가 있는데도 요행히 면한다면
속이는 풍조가 만연할 것입니다

有可罰之罪而幸免 則欺罔之風滋矣
유가벌지죄이행면 즉기망지풍자의
 
―정여창 ‘일두집(一두集)’

 

‘효(孝)’는 인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여겨져 국가의 장려 대상이 된다. 이에 효행이 뛰어난 사람에 대해 여러 민간단체뿐 아니라 국가의 표창도 행해진다. 과거에는 효에 대한 강조가 지금보다 훨씬 커 효행이 뛰어난 사람에게 벼슬을 제수하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여창(鄭汝昌·1450∼1504)은 효행이 뛰어난 인물로 추천되어 참봉이라는 벼슬을 제수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효자라는 헛된 명성을 얻어 참봉의 벼슬을 받게 된 것이니 제수의 명을 거두어 달라는 상소를 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실제 잘한 일이 없는데도 헛되이 상을 주면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진출하게 됩니다(苟無爲善之實而虛賞 則僥倖之人進).”

실상이 아닌 헛된 명성으로 대접받는 일이 있게 되면, 얄팍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실상을 추구하기보다는 알려지는 것에 더욱 치중하고 만다. 그리고 헛된 명성은 더욱더 부풀려져 실상을 갖춘 사람들보다 그들이 더욱 큰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그럼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잘못이 있어도 벌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있으므로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너도나도 동참하여 하나의 사회 풍조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정여창은 실상에 맞지 않는 상을 내린 것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며 상벌의 기능과 폐해에 대해 논하였는데, 어쩌면 후자에 더욱 중점을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실제 효자가 아닌데도 남들이 효자로 오인하도록 행동한 것은 사람들을 속인 것이며, 나라에 전해져 관직의 포상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국가를 속인 죄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제라도 실상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을 속이는 일이 되므로 죽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 하였다.

정여창의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호는 일두(一두)이다. 사림의 영수였던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등의 직임을 지냈다. 무오사화로 귀양을 갔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정여창#일두집#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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