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오늘 주제는 ‘가족’이다. 가족여행은 다른 여행과 다르다. 친구나 친척, 생면부지의 타인과 떠나는 여행에 비교해서. 가족끼리니 보통은 더 쉽고 편안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다. 세대차와 성별차, 누적된 불만과 몰이해가 표출된다면…. 그래서 가족여행은 더 까다롭다. 특히나 가장에겐.
그래서 ‘관광(觀光)’이 아니라 ‘여행(旅行)’을 제안한다. 나들이의 방점(傍點)을 ‘볼거리’에 두지 말고 ‘함께’에 두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지난 6개월간 가족이 한자리에서 담소한 게 몇 번이나 되는지. 서로가 상대의 변화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고 지나친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가장 먼 거리인 것처럼, 자식과 부모, 형제자매 남매 사이가 딱 그렇다. 그래서 그냥 함께 지내는 데 몰두하라고 권한다. 시골 외가에서 하릴 없이 대청마루나 평상에서 뒹굴뒹굴 구르다가 할머니가 주는 삼계탕이며 삶은 옥수수를 까먹고 놀 듯. 그러면서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그렇게만 해도 가족의 여행은 의미 있다. 》
여유, 향유, 포만의 마을 삼지내
창평 삼지내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깨달았다. 여기야말로 최적의 가족여행지라고. 창평은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군의 한 면. 산지에 둘러싸여 그다지 넓어 뵈지 않는 평야에 논을 끼고 있는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2007년 청산도와 함께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사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옥에서’라는 고택에서의 숙박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마을에 첫발을 들이는 순간, 내 경박함을 후회했다. 살포시 감싸는 푸근함에 치유되는 느낌을 갖게 돼서다. 그 힘,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유려한 곡선에서 온다. 강돌을 진흙에 이겨 쌓은 곡선의 담장, 그 담과 담 사이로 난 골목길, 그 담장 아래는 도랑이 있고, 거기선 맑은 물이 졸졸졸 흘러내린다.
마을에서 직선을 보기란 쉽지 않다. 담장도, 골목길도, 물길도 모두 곡선이다. 그 골목은 미로처럼 마을을 헤집는다. 직선은 속도를 상정한다. 반면에 곡선은 여유를 선물한다. 그게 삼지내 마을로 발길을 들이는 이유다.
15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물의 마을
삼지내는 ‘세 갈래 물길(三支川)’이라는 뜻. 세 물길은 동쪽 월봉산에서 흘러내리는 월봉천 운암천 유천을 말한다. 물은 월봉산과 남쪽 국수봉 산자락에 감싸여 아늑한 이곳에 모이는데 마을은 그 물가다. 이런 지형은 풍수 문외한에게도 좋게 보인다. 1500여 년 전 백제 때부터 마을이 들어선 이유다.
마을엔 구한말 고택도 여러 채다. 모두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해, 아들과 함께 전사한 전라좌도 의병장 고경명 선생(1533∼1592)의 후손이 지은 집들이다. 창평은 광주 나주 장성과 더불어 호남에서 인물이 많이 난 곳이고, 창평 고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명품고택 ‘한옥에서’ 하룻밤
이 집은 마을고택 중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한옥이다. 구한말 사대부 가옥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방안에는 보일러와 샤워를 할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을 갖췄다. 돌담에 둘러싸인 널찍한 잔디 마당을 일(一)자형의 안채와 별채, 사랑채와 뜰 안채가 안고 있는 형국. 사랑채와 뜰 안채는 화단과 장독대를 사이에 두고 독립성을 유지한다.
여주인이 기거하는 안채는 다른 집에 비해 높다. 집안 동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한 것. 안채의 정면엔 툇마루가 있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엔 대청마루가 있고. 대청이야 아파트의 거실격인 만큼 새롭다 할 수 없지만 툇마루는 좀 다르다. 오로지 한옥에만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한옥에서 살아보지 않은 자녀에겐 특이한 공간이다. 가족의 대화가 주로 예서 이뤄져서다.
그런 툇마루의 특별한 기능. 신발을 벗지 않고 걸터앉을 수 있어서다. 그렇다보니 집안대화가 대부분 여기서 이뤄진다. 마당의 일부인 만큼 화초 감상이나 해바라기도 할 수 있고, 빗소리를 듣거나 눈 내리는 모습도 여기서 볼 수 있다. 소반에 챙겨온 식사도, 매미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도 가능하다.
내가 묵던 그날, 툇마루에선 휘영청 뜬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그 달을 친구삼아 수작했던 한 잔 술. 고적한 달빛에 술은 맛을 더했다. 아쉬웠던 건 아내와 아들형제와 함께하지 못한 것. 그래서 조만간 가족과 다시 찾기로 작심했다. 풀벌레 소리 들리는 가을쯤에. 평소 꺼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갈 것이라 확신한다.
▼입 호강 창평장터 ‘암뽕순대’ ‘약초밥상’… 눈 호강 소쇄원 죽녹원 메타세쿼이아길▼
삼지내 마을 가족여행, 이곳만은 꼭
가족여행 일정은 단순할수록 좋다. 볼거리가 아니라 함께 지내며 이야기 나누기에 의미를 두어서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남는 시간엔 편히 쉬기를 권한다. 삼지내 마을의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정이라면 이런 걸 권한다.
아침식사는 창평 국밥거리가 좋다. 이곳 장터국밥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돼지머리와 내장을 돼지 피와 함께 콩나물을 넣고 끓여내는데 국물 맛이 깔끔하고 시원하기로 소문났다. 돼지창자에 담은 암뽕순대의 부드러움도 일품. 다음엔 순천 낙안읍성(76km·1시간 소요)을 찾는다. 점심식사는 순천시내 대원식당(21km·30분 소요)의 한정식이 어떨지. 남도정식의 푸짐한 상차림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고는 삼지내마을로 향한다. 도중 담양의 명소인 메타세쿼이아 길(83km·1시간 소요)을 지난다.
도착하면 숙소 체크인(오후 3시부터) 후 골목길을 걷는다. 툇마루에서 낮잠도 즐길 수 있다. 저녁식사는 담양읍내의 명물 떡갈비가 제격. 읍내까지는 11km(20분 소요). 식후엔 숙소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정담을 나누자. 가족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 골목길을 한 바퀴 산책한다. 인기척 없는 첫새벽 마을의 적막한 아침, 절간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아침 식사는 창평면사무소 뒤편 골목쟁이의 ‘약초밥상’이 좋다. 최금옥 씨가 직접 따 장아찌로 담근 100여 가지 약초와 된장국을 직접 가져다 먹는 건강밥상이다. 이후엔 대나무테마파크 죽녹원, 조선 선비의 멋스러운 정원 소쇄원, 한국대나무박물관을 돌아본다.
맛집: ◇창평장터국밥(담양): 창평 장터. 061-381-1384 ◇대원식당(순천): 한상차림(4인) 점심 10만 원, 저녁 12만 원. 장천동 35-11, 061-744-3582 ◇덕인관(담양읍내): 한우암소로만 만든 떡갈비(2만7000원), 대통밥(1만1000원), 죽순추어탕(8000원)의 명소. 061-381-3991 ◇약초밥상: 1만 원(어린이 5000원). 061-383-6312
관광지: ◇죽녹원: 멋스러운 대나무 숲 속의 산책로(4.2km)를 걸으며 죽림욕을 즐긴다. 연중무휴, 061-380-2680 ◇소쇄원: 낙향한 선비 양산보(1503∼1557)가 천연의 지형과 수림을 활용해 조성한 자연미 넘치는 정원. 061-382-1071 ◇한국대나무박물관: 죽향 담양의 대나무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설. 061-380-2901
▼여행정보▼
찾아가기: 호남고속도로(25번) 창평나들목에서 3, 4분 거리. 광주대구고속도로(12번), 고창담양고속도로(253번) 갈림목에서 가깝다.
담양창평 슬로시티 삼지내마을: 온 동네 집을 두른 돌담은 등록문화재(265호). 그 돌담 골목길의 총연장은 3600m나 된다. 그 길을 느긋하게 걸으며 고적한 마을의 분위기를 즐기는 게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다. 체험프로그램 등 모든 정보는 마을 안 방문자센터(www.slowcp.com)에서 구한다. 단, 월요일은 쉰다. 061-383-3807 ◇달팽이학당: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교실. 슬로아트(벌집으로 꿀초 만들기), 슬로푸드교실, 자연채집학당이 있다. ◇마을목욕탕: 주민과 숙박객을 위한 무료·무인시설(오전 10시∼오후 5시) ◇마을 밖 자전거길: 싸목싸목 길(11.7km), 명옥헌 길(11km), 미암 길(6km).
한옥에서: 삼지내마을 유일의 사대부가옥 숙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인증 우수 전통한옥문화체험 숙박시설. 안채의 안방(4인)은 주중 15만 원, 주말 16만 원. 2인실은 5만 원(주중)부터, 성수기(7월 20일∼8월 25일)엔 2만 원 추가. 010-3606-1283(김영봉). www.hanok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