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악기 찾아 평생 헤맨 굴드, 그가 사랑한 단 하나의 피아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9일 03시 00분


◇굴드의 피아노/케이티 해프너 지음/정영목 옮김/352쪽·1만8000원·글항아리

1963년 미국 뉴욕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전용의자에 앉아 연주 중인 글렌 굴드. 글항아리 제공
1963년 미국 뉴욕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전용의자에 앉아 연주 중인 글렌 굴드. 글항아리 제공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1998년 연재를 시작한 ‘배가본드’에서 뜻밖의 선택을 했다. 막 인기를 얻은 주인공 미야모토 무사시를 상당 기간 완전히 감춰버린 것. 중반부에 등장시킨 라이벌 사사키 코지로가 조연이 아닌 또 다른 주연으로 다뤄졌다.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결투를 향해 가는 두 인물의 행적을 동등하게 병렬시키려 한 작가의 야심은, 기약 없는 연재 중단으로 좌초된 상태다.

이 책의 전반부는 배가본드를 닮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간략한 성장기에 이은 두 번째 장에서 느닷없이 그보다 1년 앞서 태어난 시각장애인 조율사 샤를 베른 에드퀴스트의 삶을 짚는다. 다음 장의 주인공은 굴드가 열 살 무렵 멀리 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한 대의 피아노다. 저자는 20여 년 뒤 이들 셋이 조우해 다시없을 특별한 소리를 쏟아낸 10년간을 절정부로 놓고 각자의 삶을 소개했다. 굴드를 위해 한 대의 피아노를 수천 번 조율한 에드퀴스트가 그랬듯, 피아노 ‘CD 318’은 과묵한 생명체처럼 묘사된다.

원제 ‘A Romance on Three Legs’는 그랜드피아노의 세 다리와 함께 세 갈래 삶의 짧은 만남을 지칭한다. 중심은 물론 굴드다. 이 책은 너무 익히 들어 식상해진 굴드의 결벽적 삶에 낯선 재료를 추가해 흥미롭게 재구성한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음 후광 없이 굴드의 손가락이 내리는 명령에 세심하게 반응했던’ 유일한 피아노, 그 둘을 매개했던 명민한 조율사에 대한 재조명은 굴드의 음반을 듣는 행복감의 폭을 몇 뼘 넓혀준다.

취소된 원정 콘서트에 홀로 보내졌다 사고로 땅바닥에 처박힌 피아노가 절명하면서 이들의 연애는 세상 모든 연애처럼 예고 없이 끝장난다. 얼마 뒤 한때의 전담 조율사 에드퀴스트는 굴드의 부고를 라디오 뉴스로 접한다. 새 부품으로 수리돼 홀로 남은 피아노의 뒷얘기는 관우 잃은 적토마를 연상시킨다. 한 연주자가 어떤 피아노를 만나 ‘마음속에 늘 꿈꾸던 소리를 실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기적이다. 굴드는 ‘그 피아노를 알아봤다’고 했다. 모든 연애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알아보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굴드의 피아노#케이티 해프너#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