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여름 독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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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쓰고 띠를 매니 발광하여 소리치고 싶은데, 서류는 어찌 이리도 밀려드는가. 남쪽 골짜기 푸른 솔 펼쳐진 것 바라보긴 하지만, 어찌 해야 맨발로 두꺼운 얼음 밟아 볼까나.’ 중국 당나라의 두보(杜甫)도 무더위를 견디기 어려웠나 보다. 의관을 정제하고 일에 몰두하자니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흘러 답답해 미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연암 박지원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그가 사촌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뭇사람들은 무더위나 매서운 추위를 만나면 알맞게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나 봅니다. 옷을 벗거나 부채를 연신 휘둘러본들 불꽃 같은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하고, 화롯불을 쪼이거나 털배자를 껴입어도 차가움을 물리치지 못하면 더욱 떨리기만 하니, 이런 것들은 모두 독서에 마음을 붙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자기 가슴속에서 추위나 더위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요.’

박지원과 같은 시대의 정조 임금은 “더위가 아무리 대단해도 정사를 돌보는 틈틈이 독서를 중단한 적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더위를 물리치는 데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몸을 바르게 할 수 있고 마음이 굳건해져 더위와 같은 바깥 기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부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열심히 책 읽으면 오히려 피로가 풀렸다”는 정조이니, 보통 사람들은 따라 하기 힘든 경지다.(이상 ‘일득록·日得錄’)

가장 시원하게 적나라한 여름 독서를 한 인물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1792∼1822)다. 그는 무더운 여름날 나체로 시원한 곳 바위에 걸터앉아 책을 읽곤 했다는데, 특히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땀을 식히는 데 좋았다고 한다. 우리가 셸리의 ‘나체 독서’를 따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니 황동규 시인의 ‘탁족(濯足)’에 책을 더하면 족할 법하다.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요즘엔 ‘책맥’, 그러니까 책 읽으며 맥주를 곁들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다. 책맥의 원조라 할 허균이 ‘한정록(閑情錄)’에서 말한다. “해가 져 더위가 좀 가신 저녁 무렵 술 석 잔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 독서인데 술까지 있으니 무슨 말을 더하랴.” 바야흐로 무더위를 이길 만한 책 몇 권을 골라야 할 때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여름#독서#무더위#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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