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27>새로움, 창조적 모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앙리 루소, ‘꿈’.
앙리 루소, ‘꿈’.
앙리 루소(1844∼1910)는 파리 세관의 하급 관리였습니다. 출입국자의 통행료와 수출입품 세금 징수 업무를 했지요. 그런 세관원을 후대 사람들은 독창적 미술의 창조자로 기억합니다.

49세에 미술의 길에 들어선 화가는 주말마다 가는 곳이 있었어요. 파리 시내의 식물원과 미술관이었지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는 화가는 이국적 식물을 관찰하며 형태와 색채 감각을 익혔습니다. 거장들의 다양한 명작을 베껴 그리며 화면 구성과 표현 방법을 훈련했습니다.

화가는 열대 풍경을 즐겨 그렸습니다. ‘꿈’은 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꿈에서 이런 밀림의 환상을 본 후 제작했지요. 그림 속 산세비에리아와 노랑 깃털 새 형태가 돌처럼 단단합니다. 무려 50여 가지 초록색을 사용해 울창한 열대림을 표현하고자 했다지요. 정글의 달밤과 1830년대 스타일 붉은 소파, 나체 여인과 수풀 뒤 코끼리, 피리 부는 목동과 키다리 연꽃, 아프리카 사자와 인도의 뱀이 캔버스 안에 신비롭게 공존합니다. 낯익은 소재와 무한한 상상력이 기묘하게 결합된 독특한 미술이었지요.

이런 색다른 화풍은 모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화가는 유니콘이 등장하는 중세의 양탄자에서 얻은 영감으로 환상적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견고한 형태는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의 대가 우첼로를 따라 했어요. 정글의 호랑이는 낭만주의 미술의 기수 들라크루아 그림 속 맹수를 보고 그렸지요. 200여 종 야생 동물의 생김과 습관이 적힌 동물도감과 식물의 구조와 특성을 담은 식물도감도 참고했습니다. 그럼에도 완성작은 널리 알려진 미술사의 명화와 전문서적 삽화와 전혀 다릅니다.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개성이 돋보였지요.

얼마 전 공개된 새 국가 브랜드에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보며 빛나는 미술 유산을 자산으로 독자적 예술을 성취한 화가를 떠올렸습니다. ‘명암법과 원근법조차 제대로 모른다.’ ‘취미로 그림 그리는 일요화가다.’ 당대 전문가들은 미술가를 비아냥거렸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를 비롯한 동료와 후배들은 달랐습니다. 창조적 모방의 텃밭에서 거둔 새로운 미술을 값지게 평가했어요. 모방과 창조, 진부함과 새로움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완성된 결과물과 참고했던 원작 사이의 심화된 차이가 아닐까요. 그 차이는 몇몇 전문가가 아니라 누구나 수긍할 만큼 명백해야겠지요.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앙리 루소#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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