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새 소설집 ‘후후후의 숲’
원고지 10장의 단편 31개, 읽는 재미와 함께 진한 감동 선사
“한 번 듣고 잊지 못한 이야기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그런 이야기들 중 독자들과 나누고 싶고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조경란 씨(47)가 새 소설집 ‘후후후의 숲’(스윙밴드·사진)을 펴냈다. 원고지 10장 정도의 짧은 이야기 31편을 묶었다. 작가는 “단편도 장편도 되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지만 언젠가 꼭 쓰고 싶어서 아끼던 것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 편 한 편이 술술 읽힌다. 난해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가령 ‘노력이라고 생각하면’에선 결혼하긴 다 틀렸다고 생각했던 서른세 살 교사 영주가 같은 학교 교사 기준을 만나는 얘기로 시작된다. 점집에 가서 평생 해로 비법을 물어 보니 아들 쌍둥이 있는 집 가위를 훔쳐 와야 한단다. 그것도 영주가 직접. 막막해진 영주 속도 모르고 기준은 연휴에 누나네 집에 같이 가자고 한다. 그런 기준에게 헛일 삼아 “조카가 몇이죠?”라고 영주가 묻자 돌아오는 대답. “둘요. 사내애들 쌍둥이.”
영주가 비죽비죽 웃듯 그렇게 독자를 웃게 만드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짠한 소설도 있다. ‘백설공주 유모와 (몇 번째인지도 모를) 난쟁이’가 그렇다. 백설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 유모는 ‘일곱 번째 난쟁이를 찾아 달라’는 공주의 유언을 따라 난쟁이를 찾아다닌다. 일곱 번째 난쟁이는 실은 독이 든 사과를 삼킨 공주를 살려낸 이다. 구두수선집에서 일하는, 몇 번째인지는 모르는 난쟁이를 만나 공주가 남긴 사랑의 말을 전하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떠나면서 유모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어쨌거나 공주의 유언을 전했고 그것은 누구에게 전해져도 좋을 사랑의 말이었으니까.” 작가는 이렇게 잘 알려진 동화를 통해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관한 잔잔한 안타까움을 전한다.
맞벌이 동생네가 분가한 뒤 어머니가 손주들의 장난감 왕관을 쓰고 다니면서 허전해하는 모습에선, 동생의 손주를 키웠던 작가 어머니의 삶과 흡사해 애틋함이 더욱 와 닿는다. 조 씨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소리를 조음해 나가듯 매일매일 이 짧은 소설을 써나갔다”면서 “수수하고 다정한 책으로 느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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