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드러누워 뒹굴던 내 눈에 백과사전이 들어왔다. 우연히 백과사전을 펼치게 된 나는 그때부터 틈만 나면 그 책을 끼고 살았다. 어느 쪽을 펼쳐도 읽을거리가 그득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했고, 총천연색 사진까지 실려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다.’
생명과학자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 ‘과학자의 서재’에서 밝힌 어린 시절 독서에 눈뜬 순간이다. 이미 열 살 무렵 백과사전을 통독한 빌 게이츠는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독서대회에서 아동부 1등과 전체 1등을 모두 차지했다. 근대 과학소설의 선구자로 작품 소재들이 그야말로 백과사전적인 쥘 베른(1828∼1905)이 말했다. “백과사전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백과사전의 대명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초판(1786년) 구입자 가운데엔 미국에서 나온 해적판을 구입한 조지 워싱턴 전 미국 대통령과 토머스 제퍼슨도 있었다. 브리태니커는 항목 집필자들의 면면이 대단했다. 1911년 11판 집필자들 중에는 토머스 헉슬리, 표트르 크로폿킨 등이 있었고 1926년 13판에는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후디니가 각각 정신분석, 물리학, 마술 항목을 집필했다.
서유구(1764∼1845)가 편찬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농사와 가정생활을 중심으로 방대한 실생활 지식을 망라하여 ‘조선의 브리태니커’로 일컬어진다. 교정을 맡은 그의 아들 서우보는 33세 때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수십 년 공들인 ‘임원경제지’ 100여 권을 근래에 겨우 끝마쳤으나 책을 맡아 지켜줄 자식과 아내가 없는 것이 한이로다. 펼쳐 보다 눈물이 오래도록 흐르는지도 몰랐구나.”(‘금화경독기’)
백과사전은 문화적 국력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일본은 1908∼1919년 산세이도(三省堂)에서 간행한 ‘일본백과대사전’으로 근대 국가로서의 문화적 자부심을 세웠다. 제1권 간행 축하연에서 ‘우리나라의 빛으로 공경하고 우리나라의 보물로 사랑할 책’이라는 찬가가 불렸다. 우리나라에는 정부 지원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979∼1991년에 편찬해 간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있다.
지식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속도가 빠른 오늘날에도 지식의 표준 구실을 하는 백과사전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의 지식 자산과 문화 역량이 결집된 21세기의 새로운 대표 백과사전을 추진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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