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차가워.” 푹푹 찌는 여름날 차디찬 우물물 한 바가지를 등줄기에 뿌리면,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외마디 소리다. 소리까지 시원하다. 윗옷만 벗고 엎드려 물을 끼얹던 ‘등목’은 예전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등목, 등물, 등멱, 목물.’ 엇비슷하게 입길에 오르내리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 중 하나는 여전히 푸대접을 받고 있다. 북한에서는 문화어지만 남한에선 표준어가 아니다. ‘등멱’이다.
한데 이상하다. 입말로 보나, 맞춤법으로 보나 등멱이 표준어가 아닐 까닭이 없어 보인다. ‘등+멱’의 구조인데, ‘멱’은 ‘미역’의 준말이다. 미역은 ‘냇물이나 강물 또는 바닷물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씻거나 노는 일’이다. 그러니 집에서 간단히 등을 씻는 것을 ‘등멱’이라고 해서 문제될 게 없을 듯하다. 둘 다 표준어인 ‘담’과 ‘벽’을 합친 ‘담벽’이 여태껏 비표준어인 것과 비슷하다. ‘등물’을 보더라도 등멱을 표준어로 삼지 못할 까닭이 없다. ‘등물’도 한동안 ‘목물의 잘못’이라 했다가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표준어가 됐기 때문.
윗옷을 훌렁 벗으면 드러나는, ‘사람의 몸에서 허리 위의 부분’을 가리키는 낱말은 뭘까. 많은 이가 ‘위통, 우통, 웃통’을 입길에 올리지만 ‘웃통’이 옳다. 그런데 가만,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사이시옷을 쓸 수 없는’ 말법에 따르면 위통이나 우통이 맞는 게 아닐까. 열쇠는 ‘웃’이다. ‘웃’은 ‘우’에 사이시옷이 붙은 게 아니라 ‘위’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여기에 밥통, 몸통이라고 할 때의 ‘통’이 붙은 것이다. 또 있다. 겨울에, 방 안의 천장이나 벽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찬 기운을 우풍이라는 사람이 많지만 ‘웃풍’이다. 웃바람이라고도 한다.
‘웃’ ‘윗’ ‘위’의 쓰임새를 쉽게 구분할 순 없을까. ‘웃’으로 발음되는 말이더라도 위아래가 대립되는 말은 ‘윗’으로만 적고(윗니, 윗목), ‘웃’으로 굳어진 말 중 위아래 대립이 없는 말은 ‘웃’으로 적는다(웃어른 웃돈 웃비). ‘위’는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 쓰면 된다. 그럼 웃옷과 윗옷은 어떨까. 둘 다 맞지만 뜻은 다르다. 윗옷은 치마나 바지에 대립되는 상의(上衣)를 뜻하고, 웃옷은 맨 겉에 입는 옷이다. 즉, 와이셔츠는 윗옷이고, 바바리코트는 웃옷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