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턴 존이 훌륭한 작곡가라 칭송하는 이가 있다. 폴 매카트니도 거기에 동의했고 그의 솔로 앨범에 베이스 연주까지 보탰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은 “난 그 사람의 모자란 버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사람, 프랜 힐리(43)다. 영국 스코틀랜드 록 밴드 트래비스(1990년 결성)의 보컬, 작사·작곡자, 리더. 8일 오후 그와 영상통화로 만났다. 3년 만의 신작(‘Everything at Once’) 발표, 경기 이천 지산밸리록페스티벌(22∼24일) 참가 얘기를 하려고.
독일의 자택 침실에서 전화한 힐리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카메라를 돌려 침실 창밖을, 작은 구름이 두 조각 뜬 베를린의 파란 하늘을 보여줬다. “오늘 날씨 참 좋네요. 그렇죠?” 트래비스 곡들의 시작하는 음정쯤 되는 낮은 미성.
그에게 날씨 얘기는 안부 인사 이상이다. 1999년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 그들이 노래 하나로 비를 부른 건 전설적 일화다.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왜 나한텐 늘 비가 내리지)’의 첫 줄이 연주되자마자 불볕이 걷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일.
트래비스는 그로부터 10년 뒤 또 한 번의 마법 같은 순간을 한국에서 맞았다. “2009년 서울 공연에서 관객들이 무대 위로 일제히 종이비행기를 날린 것 말이죠?” 당시 ‘Closer’의 후렴구가 터질 때 무대로 날아든 비행기 중 2, 3개를 그는 아직 “우리 집 아래층 보물 상자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난생처음 본 아름다운 그 순간은 무덤까지 가져갈 기억이죠. 절대 못 잊어요.”
힐리는 “전날 밤 열 살 난 아들 클레이와 유로 2016 ‘독일-프랑스’전을 본 탓에 이제 막 일어났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독일인과 결혼해 8년 전 베를린으로 이주한 그는 트래비스 신작을 데이비드 보위(1947∼2016)가 명반들을 만든 베를린 한자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갈 때마다 1970년대로 통하는 문을 여는 듯 신비로웠지요.”
‘Sing’ ‘Writing to Reach You’ ‘Turn’, 신작의 ‘Radio Song’까지…. 아름다운 멜로디를 끝없이 뽑아내는 비결이 궁금하다. “멜로디란 칼새의 비행처럼 자유롭고 예측할 수 없어야 합니다. 주기율표에서 새 원소를 발견하듯 번쩍 하는 순간은 가끔 오죠.” 힐리는 “프랑스의 시골집에서 뭔가 떠올라 갈색 봉투 앞뒷면에 빼곡히 적은 게 ‘Flowers in the Window’의 초안이 됐고, ‘Sing’은 소리를 죽인 채 TV를 보다 불현듯 떠올랐다”고 했다. “반드시 존재해야 할 노래들은 숨어 있다 나옵니다. 저의 일은 잠자코 기다리다 잽싸게 낚아채는 것뿐이죠.” 그는 “그러려면 최대한 조용하고 사적인 곳이 필요한데 지금 이 방이야말로 역대 내 침실 중 최고”라며 웃었다.
힐리는 “‘Why Does It…’이 비를 부르는 노래라면 신작에 실린 ‘Magnificent Time’은 해를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작년 4월에 작곡했는데 그 뒤로 날씨가 쭉 좋았거든요.”
트래비스가 오는 24일의 이천 날씨를 “맑음!”이라 예보해버린 힐리는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이 꼭 알아둘 게 있다”고 했다. “당신들은 우리 마음을 완전히 열어버리는 재주가 있어요. 달력에 적힌 한국이란 글자를 볼 때마다 얼마나 설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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