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림 속 남자는 울고 있지만 울고 있지 않아요. 그냥 우는 척을 할 뿐, 사실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요.”
울고 싶어도 소리 내지 못하는 병, 슬픔을 슬픔으로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병을 민모션증후군이라고 한다. 소녀 작가 안현서의 두번째 장편소설 ‘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박하 펴냄)는 모든 일에 확신을 잃어버린 이 시대 사람들의 정신적 병리를 다룬다.
그림 그리는 남자, 서윤은 유년 시절의 불운한 과거로 감정 장애를 앓는다. 스스로 아무런 향을 발산하지 못했던 ‘향수’의 그르누이처럼 그 역시 타인에게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았자 배신당하고 말 거라는 심리적 억압 때문에 자기 표현이 불가능한 서윤에게 아름다운 여인 유안이 나타난다. 서윤의 감정을 읽어내 그림에 제목을 달아주는 유안은 그에게 구원과도 같은 존재다.
저자는 앞서 “다음 작품은 지독하게 질긴 연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라고 예고한 대로 이 소설에서 구원과도 같았던 만남이 섬뜩한 악연이 되어 돌아오는 과정을 촘촘한 구도로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 부침을 반복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미묘한 인간 심리 묘사는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작가의 시선이라 하기엔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정교하다.
서울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추천사를 통해 소설 ‘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를 이렇게 평했다.
“이 날카로운 소녀 작가는 제주도 바다 물빛 강렬한 원색적 세계 같은 소설 문장 속에 사람의 삶의 인연과 운명과 새로운 삶을 향한 희구를 수놓는다.(중략) 안현서는 소설의 표면에 사회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이 시대 사람들의 유행병을 날카롭게 포착해 보인다. 순수하다는 것은 근본적인 것, 완전한 것에 가까움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린 것, 미숙한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 순수하기에 근원에 가 닿는 시선을 여기서 발견한다.”
이처럼 ‘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는 영민한 소녀 작가가 지친 현대인에게 전하는 한 다발의 위로이다. 소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통스러운 불안과 상흔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끝내 인간의 선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지친 마음의 갈증을 달래고 싶은 독자라면, 오는 여름 휴가 때 ‘민모션증후군을 가진 남자’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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