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과 ‘부산행’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무용수 박재인(무브스튜디오 대표)이 안무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두 영화 모두 춤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무용수가 도대체 어떤 장면을 안무했다는 것일까?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로 99길의 무브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크리에이티브 보디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이다. 액션 장면을 제외하고 베드신이나 좀비 등장 등 여러 사람이 나와 연기하는 장면에서 움직임을 안무해 주는 역할이다. 영화 ‘곡성’에서 배우 황정민의 굿 장면과 좀비 장면, 영화 ‘부산행’에서도 200여 명이나 출연하는 좀비들의 움직임을 안무했다.
“외국에서는 현대 무용수들이 전문적으로 맡고 있어요. 무용수들이 사람 몸의 움직임을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음악이 없을 뿐이지 춤과 다를 바가 없죠.”
그는 원래 리듬체조 선수였다. 세종대 리듬체조 코치로 7년간 활동했던 그는 우연히 접한 재즈댄스의 매력에 빠져 시간이 날 때마다 재즈댄스를 배우러 다녔다. 1991년 한 방송국에서 댄스팀 안무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자 과감하게 코치 생활을 접고 안무자로 새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클론, 박미경, 김건모 등 당시 인기 가수의 뮤직비디오와 콘서트 안무를 담당하는가 하면 서울예대에서 무용학과, 연기과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2년 엄정화, 황정민 주연의 ‘댄싱퀸’이었다. 당시 친분이 있던 엄정화의 소개로 춤 장면을 안무했다. 이후 영화 ‘국제시장’ 등 춤이 들어가는 영화에서 그는 자주 안무를 맡았다. 춤뿐만 아니라 한 영화에서는 베드신을 안무해 주기도 했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안무가를 찾고 있었는데 제가 영화 쪽에서 여러 안무를 많이 한 것을 알고 도와달라고 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제게도 모험이었죠.”
영화 ‘부산행’을 위해 그는 해외의 각종 좀비 영화들을 보면서 움직임을 연구했다. 특히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파킨슨병 환자의 움직임을 많이 참고했다. 6개월간 연기자들에게 좀비 움직임을 가르쳤다. “몸으로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는데 영화 막판에 좀비들의 움직임이 무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수정하느라 고생했어요. 좀비 역을 맡은 배우들이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앞으로 그는 영화 분야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예전에는 ‘댄서’, ‘안무가’라는 수식어가 좋았는데 이제는 ‘보디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들어요. 좀비가 아닌 새로운 공포 영화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손짓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을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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