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메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0일 03시 00분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영조 48년(1772년) 9월 7일, 충청감사 송재경이 파직된다. 죄목은 ‘목맥가분(木麥加分)’이다(‘조선왕조실록’). ‘목맥’은 메밀이다. 메밀의 원래 이름은 교맥(蕎麥). ‘교맥은 숙맥(菽麥)이라고 하고, 화교(花蕎)라고도 한다. 세속에서는 목맥(木麥)이라 한다’고 했다(‘임하필기’).

‘가분’은 관청에서, 정해진 규정 이상의 비율로 환곡을 대출하는 것을 말한다. 규정은, 지방 관아 보유 곡식의 반을 보관하고 나머지 반은 민간에 빌려주도록 했다. 문제는 환곡, 빌려준 곡식에 대한 이자다. 이자를 탐낸 지방 관리들이 반 이상의 곡식을 빌려주곤 했다. ‘가분’이 범법 행위는 아니었다. 정조 6년(1782년) 5월의 기록에는 강원감사 김희가 조정에 ‘메밀가분’을 요청하고, 조정에서 허락하는 내용도 있다(‘일성록’).

‘메밀가분’으로 처벌된 것은 메밀을 소중한 구황곡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종 7년(1512년) 8월, 함경도구황경차관(咸鏡道救荒敬差官)의 보고다. 가뭄, 홍수 등으로 흉년의 조짐이 보이면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에 관리를 파견한다. 구황경차관이다. ‘늦은 비로 콩, 팥은 더러 무성하게 익은 데가 많았고, 벼도 또한 조금씩 익어 가을에는 먹고살 수 있었습니다. 상수리(도토리)도 많습니다.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아니하여 메밀도 장차 먹을 수 있으며, 유민이나 동냥 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조선왕조실록’)

메밀은 구황곡물의 범위를 넘어선다. 메밀은 식량이 없을 때만 먹었던 곡식이 아니다. 식량은 늘 부족했다. 메밀도 늘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곡물이었다. 구황곡물을 넘어서 주요 식량이었다.

메밀은 파종 시기를 놓쳤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냈던 선비 정경운(1556∼?)이 1603년 5월 25일(음력) ‘고대일록’에 남긴 내용이다. ‘순찰사가 가뭄으로 장계를 올려 강원도의 메밀 종자를 경상도로 옮겨, 백성들이 내년 봄 구황의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청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음력 5월 25일이면 모내기가 끝났을 무렵이다. 이해 경상도 일대의 가뭄이 심해서 ‘뿌린 씨앗이 모두 시드는’ 지경이 되었다. 가뭄으로 들판 전체가 시들어갈 때 중앙정부에서는 급히 ‘메밀 대파(代播)’를 지시했다. 말라죽은 곡식 대신 메밀을 심도록 하는 것이다.

정조는 메밀 대파를 적극 권유한다. 정조 22년(1798년) 6월, 경기도 화성부(華城府) 일대에 비가 내렸다. 가뭄 끝의 단비니 조정에서는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가에 대한 의논이 있었을 법하다. 정조는, “메밀은 맨 나중에 심고 맨 먼저 익는다.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기간이 짧다”고 말한다(‘조선왕조실록’). 메밀 대파마저 간단치는 않았다. 메밀 종자가 귀했다. 중앙정부에서는 메밀 대파를 적극 권했지만 현지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조정에서는 메밀 종자를 나누어 주도록 명령하지만 지방 수령 등이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메밀이 귀해지니 시장에서도 살 수가 없다. 종자도 주지 않고 메밀을 파종하라는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메밀은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고려 말의 문신 목은 이색은 “대나무 꼬챙이에 메밀떡을 꿰어/간장 발라 불에 굽는다”고 했으며 강원도 정선의 풍광을 그리며 “메밀죽은 어찌 이리 매끄러운지/송화꿀은 참으로 향기롭구나”라고 했다. 산이 깊은 강원도 일대에서는 애당초 곡식 대신 메밀을 심었다. 추사 김정희도 “메밀꽃 희끗희끗하고 은조(좁쌀)는 희다/온 산을 뒤덮은 것이 모두 만두의 재료”라고 했다(‘완당전집’). 메밀은 떡, 수제비, 국수, 죽, 만두, 차 등으로 널리 먹었다.

메밀 대파를 적극 권장했던 정조는 승하 며칠 전, 종기 치료에 메밀로 지은 밥을 이용했다. 정조는 즉위 24년(1800년) 6월 28일(음력) 승하했다. 며칠 전인 6월 20, 21일에 종기 치료를 위하여 약재와 더불어 메밀밥을 지어 들였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6월 21일의 또 다른 기록에는 ‘(종기에) 메밀밥을 붙인 것이 오늘 여섯 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의관의 보고도 남아 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메밀#영조#파종#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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