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날카롭되 유머를 잃지 말길, 버나드 쇼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3일 03시 00분


◇버나드 쇼-지성의 연대기/헤스케드 피어슨 지음/김지연 옮김/708쪽·2만5000원·뗀데데로

1934년 영국 멜버른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추종자이자 배우인 엘런 폴록의 어린 아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버나드 쇼(오른쪽). 극작가로서 명성을 쌓은 그를 위해 한 극장 관계자는 매년 쇼의 작품을 공연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뗀데데로 제공
1934년 영국 멜버른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추종자이자 배우인 엘런 폴록의 어린 아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버나드 쇼(오른쪽). 극작가로서 명성을 쌓은 그를 위해 한 극장 관계자는 매년 쇼의 작품을 공연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뗀데데로 제공
“그는 현대 영국에서 제일지(第一指)를 굴(屈)하는 비평가, 극작가요 또 한편으로 사회주의자이며 일즉 역사가로도 상당한 업적을 보였으며 풍자가로는 아무 과장 없이 세계수일(世界隨一)이다.”

지금으로부터 83년 전, 동아일보 1933년 2월 16일자 4면에 나온 버나드 쇼(1856∼1950)에 관한 기사의 일부다. 당시 여든을 바라보던 그를 ‘풍자옹(翁)’이라고도 표현했다. 더불어 중국 홍콩, 상하이를 방문하고 일본으로 향하는 그를 두고 기사에서 “거친 이 강산(조선)에 웃음의 씨 하나 던져주지 않고 지나는 손이 무심하다”라며 아쉬움도 표했다. 당시 세계의 변방이던 조선까지 큰 관심을 보였을 정도로 그는 유명인사였다.

그도 그럴 만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오늘날 영국 노동당을 있게 한 정치 사상가, 영국 명문인 런던정경대의 공동 설립자, 마니아층이 두꺼웠던 신랄한 평론가, 명연설가로 다재다능했던 그는 각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던 ‘진짜배기’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그의 묘비명은 오역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인용되는 글귀였다.

그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써도 흥미롭게 읽혔을 법하지만 쇼 못지않게 별난 이력을 자랑하는 배우이자 극작가인 저자는 더 참신한 방법을 택했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이르는 그의 삶을 따라가며 특징적인 단면을 꼽아 키워드 위주로 정리했다. 34장으로 구성된 책에는 장별로 ‘피의 일요일’ ‘더 노토리어스’ ‘정복’ ‘제2의 소년기’ 등과 같은 솔깃할 만한 키워드들이 있다.

1장인 ‘가족’을 읽어 보면 그의 신랄한 풍자 능력과 상상력이 부모의 기질에서 영향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계획 없이 동업자와 곡물사업을 벌이다 쫄딱 망한 뒤에도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기는커녕 재미있다며 지칠 때까지 웃었다고 한다. 쇼의 어머니는 그런 엉뚱한 남편과 결혼해 속이 곪은 나머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위로 받으며 살아간 몽상가다. 쇼 역시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닥쳤을 때도 굴하지 않고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웃음을 안겨줬다.

“세계일주 중이라네. 아마도 4월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34장 첫 문장)

대화 위주로 정리된 글들은 주제별로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는 버나드 쇼를 마주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20년 넘게 쇼를 가까이서 지켜봤다는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쇼의 생애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2장 ‘학교’에서 “나는 승부욕이 없고 상을 받고 두각을 나타내는 것에도 관심이 없어서 순위를 다투는 시험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라는 쇼의 말을 인용한 뒤 저자는 ‘설사 쇼가 라틴어와 수학을 배우고 싶었다고 할지라도 학교에서는 배우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며 맞장구를 치는 식이다.

전기(傳記) 특유의 진중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 위주의 키워드로 내세운 이 책이 신변잡기를 묶은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700쪽이 넘는 책은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보인 그의 삶 자체가 얼마나 옹골찼는지를 보여준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헤스케드 피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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