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만주벌에 떡 버티고 선, 대왕이시여 거침없는 말발굽에 내달린 천년 세월 불호령, 산하 깨우는 용오름 하고 있다
내 역사 기웃대는 변방의 북풍들은 억지로 고개 들어 고구려 하늘 넘나들고 분노가 끓어오른다. 장군총 앞에 서면
눈보라 모래바람 묻힌 뼈 삭고 삭아 현실玄室엔 아직도 꺼질 줄 모르는 등잔불 적석총 바윗돌 무게 근심 또한 만근이다
용장勇壯도 천리마도 땅을 울린 이 땅에 불보다 뜨건 가슴 장엄하다 그 기개 천지연天地淵물안개 걷히는 날 옛 영토는 일어선다.
장엄하여라. 넓고 너른 내 나라의 옛 터전 지안(集安) 벌에 하늘을 떠받치고 우뚝 선 고구려의 위용이여. 광개토대왕의 혼불이여. 비록 지금은 국경 너머로 떨어져 있어 우리 문화재 가운데도 으뜸의 국보로 올리지 못하고 중국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지만 저들 비석의 나라, 글자의 나라, 대륙 정복의 나라로 뽐내고 있어도 어디 이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 견줄 것이 있더냐.
고구려 장수왕은 즉위 3년(414년)에, 그러니까 1602년 전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중원 정벌에서 64개의 성과 1400개 마을을 장악하여 국토를 넓히고 다스린 위업을 기리기 위해 조국 창건의 역사와 대왕의 행적을 담아 지린 성 지안 시 타이왕 향 타이왕 촌에 동양 최대의 기념비를 세웠다. 높이 6.39m의 네 면에 1802자의 비문을 기고웅건(奇古雄健)한 예서체로 새겼는데 이는 대륙을 영토로 삼았던 역사의 살아있는 증언이자 고구려 문화의 상징적 금자탑이기도 하다.
엉뚱하게도 1883년 일본군 장교가 수집한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가지고 일본이 왜곡, 날조하여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 신라를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뒤집기를 하였으나 정인보 박시형 등 국내 학자의 문자 해독과 연구 고증으로 바로잡은 바 있다. 너무 늦었던가, 몇 해 전 오랜 눈비바람 뿌리치고 넓은 가슴으로 서 계신 대왕 뵈오려 달려갔더니 이미 유리 누각에 갇힌 뒤였다. 시인은 ‘천지연 물안개 걷히는 날 옛 영토는 일어선다’고 했으니 기어코 오고야 말리라. 통일 더불어 우리의 너른 땅 다시 찾는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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