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권오병]제주의 매력, 따로 또 같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30일 03시 00분


금릉리의 빌라에 거주하다가 협재리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일이다. 동네 이웃분들을 초대해 저녁 식사 한 끼 대접하며 집들이를 했는데 각자 축의금을 주시기에 어리둥절했다. 제주는 집들이 때도 축의금으로 대신한다고 하셔서 받기는 했지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얼른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제주에서는 각종 경사에 축의금을 주고받는 예절 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

4년 넘게 제주에 살면서 토박이분들을 만났고 그분들의 생활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아 왔다. 그러면서 제주의 이면에 오래된 제주의 문화가 잠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주의 혼인잔치는 사흘간 치르는데 첫째 날은 돼지 등을 잡고, 둘째 날은 전 종류의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하고, 셋째 날 혼례를 치른다. 사흘 잔치를 하는 곳은 아직 보지 못했고 이틀 잔치를 치르는 게 보통이다. 특이한 점은 신랑, 신부를 모두 아는 사람이면 신랑, 신부 각각에게 축의금을 준다는 것이다.

제주는 예부터 환경적인 영향으로 남녀의 일에 확연한 구분이 있었다. 남자는 고기를 잡는 어선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안일, 밭일, 육아 등은 모두 여자의 몫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시대가 변해 남자들은 어선 일뿐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한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도 많아졌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일전에 마을 잔치에 참석했다가 어르신들께서 이주민 가족들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이주민 가정의 아빠들이 음식을 날라 가족을 챙겨 주는 모습을 보시곤 “엄마들은 뭐 하냐?”면서 불편한 눈길을 주셨다. 이러한 시각도 예전부터 살아오신 방식 때문일 것이다.

제주의 전통가옥은 본채와 별채로 나뉜다. 별채는 한두 채 짓는 것이 보통인데 예전의 가옥은 많이 알려져 있듯 지붕을 억새로 엮어 만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단독주택들도 건축 자재만 달라졌지 예전 가옥의 구조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면 부모님이 본채(안거리)를 내주고 별채(밖거리)로 거처를 옮긴다. 한 울타리 안에 자식 가족과 기거를 해도 본채, 별채에 부엌이 따로 있어서 식사도 따로 해결한다. 고부간의 갈등도 줄이되 자식이 부모님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따로 또 같이’ 사는 삶이었다. 육지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이를 어색하게 생각해 부모님 식사를 챙겼다가 손위 동서의 미움을 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제주의 텃세가 심하지 않은지, 또 지역에서 다른 문제는 없는지 지인들이 가끔 묻곤 한다.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 들은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곳 분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따로 또 같이’ 는 제주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필자(43)는 서울에서 헤드헌터로 일하다 4년 전 제주시 한림읍으로 이주해 현재 대학에서 진로상담 일을 하고 있다.
 
― 권오병
#제주도#집들이 축의금#혼인잔치#텃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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