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휴가와 여행의 의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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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패스트볼의 ‘The Way’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느 여름날, 노부부는 짐을 싸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편안한 길을 걷던, 안락한 삶을 살던 부부가 왜 갑자기 떠났을까요?

‘The way’는 미국 텍사스의 노부부 실종 기사를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둘은 옆 동네 축제 구경을 간다 하고 사라졌습니다. 아내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고, 남편은 뇌수술 후 회복 중이었죠.

기사를 접한 패스트볼(Fastball) 멤버들은 노부부가 몰래 도망가 어디선가 멋진 휴가를 보낸다고 상상했습니다. 모든 의무와 책임을 버리고 무작정 떠나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몰라도, 앞만 보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휴가와 여행을 필요로 합니다. 휴식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 쌓인 갈등, 불안,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을 상쇄할 긍정적인 감정을 찾아 떠나는 거죠. 휴식은 집에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방콕’에서 오는 긍정적인 감정은 제한적이죠. 그래서 집 떠나면 멍멍이 고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긍정적 감정을 단기간에 얻기 위해 익숙한 일상에서 떠납니다.

떠남의 가치는 우선 불편함의 회피, 놀이에서 오는 재미,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잠시 사는 자위, 새로운 걸 알게 돼 자신의 가치가 향상되는 느낌, 의미 있는 대상과의 경험 공유·관계 심화 등에 있습니다. 더 높은 가치는 자신의 삶과는 다른 새롭게 알게 된(혹은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던) 삶을 보며, 새로운 가치와 잣대로 자신의 삶을 측정하거나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제한적이거나 근시안적인 시야를 넓혀 세상의 ‘전반’을 폭넓고 자세하게 파악하며, 자신도 그렇게 파악하는 ‘마음 챙김(mindfulness)’을 경험하는 겁니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런 부분은 이렇게 유지하고, 저런 부분은 그렇게 변해야겠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현실로 돌아와도 마음 챙김 상태를 유지해 자신의 삶을 관찰하며 의심하고 호기심을 갖고 늘 변화하는 삶을 산다면, 금상첨화겠죠. 그러면 삶은 결코 지루해지지 않을 것이며, 무기력이나 우울은 빌붙을 자리를 잃을 겁니다. 휴가와 여행이 재충전(?)의 도구가 아니라 ‘자가발전’의 계기가 됐으니까요. 멋진 여행을 하며 “에이, 이런 데서 살아야 하는데” 할 때, 멈칫하고 100만 가지 이유를 대며 다시 비루한 현실로 꾸역꾸역 돌아오는 것이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직시할 수 있을 때, 좀 더 높은 수준의 휴가와 여행이 가능할 것입니다.

텍사스 노부부는 사막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떠나는 건 돌아올 곳이 있을 때 즐겁죠. 돌아올 곳이 없는 출발은 동전의 앞뒷면인 비열과 무모에서 시작되고, 그 결말은 대부분의 경우 절망과 비극입니다.

요즘 불경기로 휴가를 포기하신 분들도 계시죠? 주말에라도, 가까운 곳으로라도 잠시 떠나세요. 그래도 돌아올 곳이 있지 않습니까? 재충전은 필요합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패스트볼#the way#휴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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