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즙 영롱한 머스터드 치킨이 담긴 구리 팬을 촬영한 표지 사진만 보고는 책 내용에 딱히 공감할 부분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11년째 스스로를 먹이기 위한 용도로만 부엌을 쓰고 있는 독자에게 ‘파리지앵의 진짜 햄 치즈 샌드위치’ 이야기가 줄 수 있는 게 걷잡을 수 없는 허기 외에 무엇이겠나. 선입견을 버리고 꼼꼼히 읽게 만든 건 머리말의 첫 문장이다.
“파리에 머문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내 부엌을 마련할 때 맞닥뜨린 최대 난관은 냉장고, 오븐, 조리대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문제는 개수대였다. 부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며 개수대야말로 모든 조리 활동의 중심이다.”
부엌 4개를 경험해보고 뒤늦게 얻은 독거남의 결론과 동일하다. 지은이가 몇 주간 꼬박 인터넷을 뒤져 구매했다는 ‘깊고 넓고 새하얀 수반(水盤) 2개짜리 개수대’ 사진은 물론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밤에 침대로 가기 전에 깔끔히 정리한 개수대를 한 번 더 스윽 훔친다”는 비현실적 문장에 대한 부러움이 읽는 재미를 갉아먹진 않는다.
저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3년간 요리사 겸 제과사로 일하다 2004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블로거와 작가로도 명성이 높다. 삶의 새 터전으로 파리를 선택했음에도 결코 파리를 동경하지 않는 요리사의 투덜거림이 시종 유쾌하다.
“파리의 카페에서는 끔찍한 커피를 뻔뻔스레 내놓는다. 100곳에 이르는 파리의 노천시장 중 손수 재배한 농산물을 파는 곳은 2곳뿐이다. 프랑스인들은 벨기에인들이 발명한 프렌치프라이를 사랑하지만 파리의 프렌치프라이는 흐물흐물 눅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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