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 ]외국인 혐오… 개돼지 발언… ‘다름’을 이해못한 역주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8일 03시 00분


《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철학자만큼이나 지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고양이 대학살(로버트 단턴·문학과지성사·1996) 》
  
1730년대 파리 생세브랭가(街)의 한 인쇄소에선 직공들이 고양이 수십 마리를 때려죽이는 소동이 벌어졌다. 제롬과 레베이예라는 견습공이 주도한 이 학살은 반쯤 죽은 고양이들을 모의재판에 넘겨 교수형에 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흉내 내기에 능했던 레베이예가 인쇄소 주인의 침실 앞에서 밤마다 고양이 소리를 낸 게 그 시작이었다. 겁을 먹은 주인이 집 주변 고양이들을 모두 없앨 것을 지시하자, 직공들은 고양이를 몽둥이로 두들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작업장의 영웅이 된 견습공은 그 뒤로도 주인 부부의 놀란 표정을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며 동료들에게 즐거움을 줬다고 기록된다.

책에 따르면 당시 애완용 고양이는 고용주와 노동자를 구분 짓는 상징이었다. 또 불행을 몰고 오는 마녀로 여겨졌다. 짐승보다 못한 처지에 놓여 있던 노동자들은 여주인이 아끼던 암고양이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부르주아를 골탕 먹였다.

재미있는 것은, 혐오감을 일으켜야 마땅할 고양이 학살이 이 책에서만은 역겹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공들이 겪었던 경직된 장인-직인 관계를 이해한 독자는 이것이 18세기 노동자들이 고안해낸 최선의 항의였음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모든 집단의 풍습에는 저마다의 재치와 지혜가 깃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연구는 동시대 사람들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오늘날에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을 향한 혐오 발언들이 일상화되고 있다. 몇몇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개돼지’, ‘미개인’ 등으로 불렀다가 구설에 올랐다. 문화적 경험과 계층의 차이가 인격적인 우열을 구분 짓는 근거로 확대 해석되고 있는 분위기는 우려스럽다.

로버트 단턴은 낯선 문화와 만나는 즐거운 충격이 이러한 오류를 줄이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름’을 이해하는 문화적 공감 능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책#고양이 대학살#로버트 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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