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라 책 얘기를 하고 싶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보면 독자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그럴 때 출판사 대부분은 실망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해외 문학을 적극적으로, 많이 내는 편인 한국 출판사들은 외서를 기획할 때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겠지만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한테 책을 소개하는 게 목적이면 해외 트렌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나도 규칙적으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대표 서양 출판 시장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검토한다. 물론 책에 대한 반응이 나라마다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만일 해외 베스트셀러들만 계약하려고 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결국 망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어느 나라의 문학과 책 시장을 조사할 때 그 나라에서 어떤 도서가 잘 나가는지, 어떤 책이 화제가 되는지 고려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어느 도서가 한국에서 먹힐지는 미리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작품마다 수십만 부씩 팔리는 인기 작가들은 거의 모두 조만간 한국에 소개되는데 한국어판도 잘 나간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별로 없다. 마크 레비, 프레드 바르가스, 다비드 포앙키노스, 미셸 뷔시 등은 한국에서 반응이 밋밋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인기를 끌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는 작가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반면 희한하게도 자기 나라에서는 별로 주목을 못 받았는데도 번역판이 잘 나가는 외서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에 열린책들이 출간한 소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셸리 킹 지음·이경아 옮김)는 미국에서 나오기도 전에 10개국의 편집자들한테 마음에 들어 널리 계약되었다. 나중에 미국판이 나온 후 미국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해 출판사가 좀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반응이 괜찮은 편이다.
누구나 말하는 ‘국제 베스트셀러’도 당연히 있다. 세계적으로 소개되었으며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말이다. ‘반지의 제왕’ ‘장미의 이름’ ‘해리 포터’ ‘다빈치 코드’ ‘밀레니엄’ 등 누구나 들은 적이 있는 책이 그런 부류다. 2010년대 대표적으로 국제 베스트셀러로 성공한 책의 저자로는 요나스 요나손, 프레드릭 배크만 등이 있다.
밀리언셀러의 발행인한테 물어보면 “이 정도 판매될 줄 알았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책마다 독자 반응에 대한 예감이 있는데 예측은 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출판사에 책을 10권, 20권, 30권 맡겨봐야 그중에 하나가 베스트셀러가 될 기회가 생긴다. 운이 좋지 않으면 100권 출판해 봐야 소용없다. 잘 팔리는 책만 출간하는 출판사는 없다. 물론 의욕이 넘치는 출판인이 어느 타이틀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낼 자신이 있다면 그만큼 투자해서 온갖 마케팅을 통해 책을 주목받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홍보비가 장난이 아니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위험한 장사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란 게 참 기이한 것 같다. 도서는 대중한테 관심이나 호감을 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워낙 많은 특별한 제품이다. 그중에 조절할 수 없는 요소가 꽤 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는 절대 합리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출판사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사실이지만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정해진 공식이 있었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같은 불합리성은 독자에게 좋은 일이다. 성공적으로 출판하는 과정이 정밀과학이 아니기에 출판계는 열정과 독창력을 갖추려고 한다. 번역가, 편집자, 디자이너, 제작자 등 각자 자기 나름대로 늘 최선을 다해서 가능한 한 질이 높은 책을 내도록 노력해야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최선을 다했다면 독자들로부터 반응이 없어도 결국 좋은 책을 만든 보람만은 남는다. 그런 경우 출판인들은 아까운 책이 많아도 후회할 게 없다. 무더운 여름 많은 책을 펴낸 출판계 사람들은 마음을 졸이지만 독자들은 그만큼 넓은 독서 선택 폭을 갖고 더 재미난 휴가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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