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절정기이자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계절에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휴가지에 가져갈 만한 음반을 추천한다면?” “무더위를 식혀줄 만한 음악이 있다면?”입니다. 두 질문의 결은 조금 다르지만, 두 질문에 대해 제가 가장 많이 내놓는 답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집 작품 90의 네 곡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슈베르트는 피아노 독주곡인 즉흥곡집을 두 곡 썼습니다. 작품 90과 작품 142 중에서 특히 90에 실린 네 곡은 제게 ‘물’과 관련한 상념을 떠오르게 합니다. 네 곡 중 두 번째 곡은 숲 속의 개울을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연상하게 합니다. 세 번째 곡도 ‘흐름’을 느끼게 하지만 두 번째 곡보다 더 깊고 유장하며 무겁습니다. 넓은 강 위의 보트에 올라타 유유히 흐르는 강의 흐름을 조망하는 느낌이랄까요.
네 번째 곡은 가장 높은 음역에서 멜로디가 진행되며 청량하고도 자그마한, 동화적인 인상을 줍니다. 마치 빗물이 숲으로 떨어져 나무 잎사귀에 닿아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한 곡씩 설명하다 보니 첫 번째 곡을 빠뜨렸네요. 이 곡에도 ‘물’이 주는 인상을 적용해 보자면, 크고 작은 부피로 담겨 있거나 고여 있는 물들을 차례로 보는 듯한 상상을 줍니다. 물잔에, 처마 앞의 절구에, 그리고 연못에 가만히 담겨 흔들리는 물.
슈베르트가 이 네 곡에 대해 특별한 제목이나 설명을 붙인 것은 없습니다. 앞에 쓴 ‘물’의 상상들은 어디까지나 제 머리에서 일어난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청신한 네 곡이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이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바람이 솔솔 부는 대청마루에 앉아, 또는 산바람이 불어오는 능선에서 이어폰을 끼고, 또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침대 옆에 오디오를 켜고, 이 또랑또랑 구르는 피아노 선율들을 듣다 보면 무더위도 얼마간 달아날 듯합니다. 여름에 야외에서 라이브 피아노 연주로 이 곡집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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