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바다와 금강이 만나는 곳,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옛 장항제련소다.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장항제련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제가 제련소를 세운 것은 우리의 금과 동 등 금속을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광복을 거치면서 장항제련소는 비철금속 제련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장항제련소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 만큼 인기가 높았다. 장항 사람들은 “예전에 제련소가 먹여 살렸지요”라고 말한다. 제련 공정은 1989년 중단되었다. 2000년대 초엔 주변 지역 환경오염과 이로 인한 주민의 건강 문제가 불거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제의 수탈, 근대화 산업화, 환경오염…. 영욕이 섞여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다. 1930년대 함께 세워진 국내 3대 제련소 중 북한의 흥남제련소, 진남포제련소가 이미 사라졌기에 장항제련소의 흔적은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옛 장항제련소에서 두드러진 것은 굴뚝이다. 1936년 제련소 설립 당시 굴뚝도 함께 세웠다. 지금의 굴뚝은 1979년 재건립한 것이다. 검은 연기를 쏟아내는 장항제련소 굴뚝의 모습은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 사진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해발 120m 바위산에 우뚝 솟은 굴뚝. 높이 90m, 지름 7.5∼9.5m에 달한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조형미술품 같다. 1989년 제련 공정 폐쇄 이후 굴뚝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굴뚝의 위용은 여전히 당당하다. 굴뚝에 이어져 있는 100m 정도의 연도(煙道)는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굴뚝이 있는 바위산에 올라가면 바다 건너 군산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 장항제련소와 굴뚝을 근대의 흔적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옛 제련소 건물을 다양한 문화창작 공간 등으로 활용하고 굴뚝을 박물관이나 산업기념관으로 조성하면 좋을 것 같다. 굴뚝 주변에 전망대를 만들면 그것도 효과적이다. 또한 굴뚝에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한다면 바닷가를 배경으로 멋진 야경을 연출할 것이다.
옛 장항제련소와 굴뚝은 지금 사유재산이다. 그러나 그 의미와 가치는 사유재산의 영역을 넘어선다.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함께 기억해야 할 소중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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