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린 리우올림픽 펜싱 에페 결승에서 대역전극을 볼 수 있었다. 불리한 와중에도 박상영 선수는 “할 수 있다”를 되뇌며 10-14에서 5점을 내리 따는 역전극을 펼쳐 국민에게 감동을 안겼다. 그런데 대역전극은 에페 종목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10일 중국 베이징 쿤룬호텔 특별대국실. 결과를 확인한 탕웨이싱 9단은 망연자실하며 그대로 의자에 눕다시피 몸을 기댔다. 흔히 대국을 끝내고 시작하는 복기도 하지 않았다. 한손으로 머리를 짚고 말없이 앉아있던 그는 돌을 거두고 대국장 밖으로 나갔다. 그의 표정엔 “이런 바둑을 못 이기면 이길 바둑이 없다”는 열패감이 역력했다.
제8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 5번기 1국의 종국 상황이었다. 탕 9단에게 대역전극을 펼치며 뼈아픈 패배를 안긴 건 박정환 9단. 응씨 룰에 따른 계가로는 석점 승, 한국식 계가로는 2집반 승이었다.
분명 중반까지 흑을 잡은 탕 9단의 완승 국면이라는 게 사이버오로에서 해설하던 원성진 9단의 판단이었다. 실제 중국 현지 대국실에서도 흑이 질 수 없는 바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국후 박 9단도 “다 진 바둑이었다”는 한마디를 남긴 채 자신의 호텔 방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박 9단과 복기를 한 목진석 9단을 통해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탕 9단의 실리 작전이 성공하며 박 9단이 계속 불리한 바둑이었다. 특히 중앙에서 흘러나온 흑 대마가 큰 피해 없이 살아선 흑의 승리가 눈 앞에 보였다. 하지만 하변 백 대마를 잡으러 가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고 흑 163(기보 우하 빨간 동그라미)이 패착성 실수였다. 이어 흑 175(우상 빨간 동그라미)로 174의 아래(×의 곳)를 끊었으면 어려운 바둑이었다.”
박 9단의 끈기가 정말 대단했다. 흑 중앙 대마가 산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좌하 귀를 지킨 침착함과 하변 대마가 공격당하는 아찔한 순간에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최선의 방어를 해냈다. 그런 끈기에 질린 탕 9단은 흑 163과 같은 어이없는 실착을 저질렀고 흑 175로 나약하게 물러났던 것이다.
1국을 통해 박 9단의 우승에 대한 집념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지난 7회 대회 때 판팅위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던 것에 대한 설욕과 그동안 국내에서는 1위인데 세계 대회에서는 성적을 못내 ‘국내용’이란 얘기를 들었던 울분을 한꺼번에 털어버리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2국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3~5국은 10월 22~26일 열린다.
1988년 막을 올린 응씨배는 4년마다 한 번씩 열려 ‘바둑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1회 때는 조훈현 9단이 녜웨이핑 9단을 물리치는 극적인 승부를 보여주며 한국 바둑을 세계정상에 올려놓았다. 이어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최철한 등이 우승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제한시간이 기존 3시간 30분에서 3시간으로 30분 줄었고, 초읽기 대신 주어지는 벌점도 시간 초과 시 20분당 2집씩의 공제(총 2회 가능)로 변경됐다. 1국에선 두 대국자 모두 2번 시간초과를 해 4집의 벌점을 먹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