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박한규]나만의 콘서트를 즐기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3일 03시 00분


이번 장마철에는 비가 제법 왔다. 예보 적중률이 낮아 기상청은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지만 어릴 때부터 비를 좋아했다. 청년 시절 끓는 피를 식히기 위해 일부러 비를 맞았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비가 오면 늘 떠오르는 곡이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폭풍(템페스트). 특히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끊어질 듯한 위태로운 긴장감을 교묘히 타고 넘는 3악장의 선율은 편안한 호흡을 허락하지 않는다.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부터 쏟아지는 빗소리를 반주로 들어 볼 꿈을 간직해 왔다. 빗방울은 홀로 소리를 내지 못하니 무엇인가를 두들겨야 하는데 흙 마당도 좋고, 텐트도 좋고, 차 지붕도 좋겠지만 압권은 양철지붕이 아닐까 싶다. 꿩 대신 닭이라 폭우가 쏟아지는 밤,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잠깐 만에 지방도 옆 외지고 작은 공간에 차를 세웠다. 저 멀리 가로등이 보였다. 흔들리는 갓을 쓴 노랗고 붉은 백열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감한 무채색도 아니다. 차 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 크기에 맞추어 볼륨을 조절한다. 빗소리는 때때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지만 결코 분위기를 깨는 법은 없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전조등에 빗방울이 반짝인다. 빗방울 파편들의 군무는 한층 분위기를 돋운다. 전 악장이 끝나고 단 한 사람의 청중이 작은 손뼉을 치면 이 화려하고 짧은 17분 남짓한, 나만을 위한 콘서트는 막을 내린다. 앙코르는 없다. 지난달 6일 장면이다.

1990년대 말 잠깐 전남 여수에서 지낸 적이 있다. 집은 바다에서 150여 m 떨어진 언덕 위 아파트 10층, 동향이었다. 호수 같은 바다를 에워싼 산등성이 위로 보름달이 떠오를 때면 교교히 비치는 긴 달빛 조명에 와인 잔을 들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다른 일들은 흔쾌히 포기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가까이에 오봉저수지가 있다. 농업용수용 저수지 치고는 제법 크고 주변에는 거의 가옥이 없는데 한 달에 두 번 정도 찾아간다. 보름께면 물에 비친 달을, 그믐께면 물에 비친 별을 찾아서 간다. 대도시에서 별을 보기 힘든 이유는 대기오염의 문제도 있지만 먼 별빛을 가까운 인공조명이 삼켜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보는 젖은 달과 별이 참 예쁘다.

도시의 화려한 조명이 만들어 낸 야경과 격식을 갖춘 콘서트도 좋지만 이런 한가로운 야경과 소박한 콘서트도 그 나름으로 색다른 맛이 있다. 이번 주말에는 방초정 앞 감천으로 피라미를 잡으러 갈 생각이다. 여남은 마리만 잡혀도 튀겨 볼까 한다. 벌써 입에 침이 돈다.

 
※필자(54)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박한규
#베토벤#장마철#소박한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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