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좀비(Zombie)를 소재로 한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를 격퇴하며 나아가는 장면에서 일부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환호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인간이었지만, 인간성을 잃고 오로지 인간을 공격하는 존재로 전락한 좀비를 상대로 말이다.
카리브 해의 부두교에서 유래된 좀비는 살아있는 인간의 살점과 뇌를 뜯어먹는 부활한 시체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영화, 만화, 게임 등의 소재로 끊임없이 발전해 온 좀비는 진지한 학문의 대상으로까지 등장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2010년부터 5년간 좀비에 관한 학술논문이 20편이 발표됐다. 이 시기 발표된 온라인 저널은 2000여 편에 이른다. 미국의 한 보안업체는 좀비에 맞서는 상황을 가정해 군인과 의료진 등 1000여 명이 참가한 훈련을 실시했다.
이쯤 되면 좀비 현상을 무조건 비현실적이라고 치부하기는 힘들다. 만일 영화 ‘부산행’처럼 원인 모를 전염병이 퍼져 좀비로 인한 국가적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
본보는 네이버 ‘워킹데드 공식카페’ 회원 336명을 대상으로 실제 좀비가 나타났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물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또 취재팀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가서 공격 및 방어용품, 비상식량, 피난용품 등을 직접 구입해 봤다.
기자가 가장 먼저 챙긴 물품은 물, 통조림, 건어물 등 비상식량. 좀비에게 당하기 전에 굶어 죽긴 싫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에선 인간들이 먹을거리로 싸우는 장면도 자주 등장하기 마련이다. 휴대용 라디오도 구입했다. 비상 상황에서는 휴대전화가 사용 불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 속에서 무조건 “안전하다”고만 외치는 정부, 군대라 할지라도 인간이 많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가장 많이 사놓고 싶었던 것은 청테이프. 영화에서처럼 좀비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청테이프를 이용해 책이나 수건 등으로 몸을 꽁꽁 싸맬 수도 있다. 임시로 문을 잠글 수 있는 자물쇠 역할을 하거나 찢어진 옷이나 가방 등을 수선할 수 있는 등 만능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공격무기로는 ‘부산행’에서도 믿고 사용한 야구방망이를 비롯해 망치, 골프채 등을 구입했다. 해외에서처럼 총기류를 구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뇌가 전염된 상태의 좀비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머리에 치명상을 입혀야 한다. 단, 많은 수의 좀비가 나타난다면 무기를 사용하기보다는 도망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사실 과거에 나온 좀비들은 아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갑자기 나타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인간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영화 속에 나오는 좀비는 마구 뛰기 시작했다. 육상선수 출신인 좀비는 보통 인간보다 빠르다. 격투기 선수 출신 좀비면 싸움을 더 잘한다. 요즘 좀비들은 과거 인간일 때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
보통의 좀비는 학창 시절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봤거나, 주말 골퍼 정도 실력을 갖고 있다면 퇴치가 어렵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가장 공포스러운 건 친한 동료나 가족 등이 갑자기 좀비로 변했을 때다. 과연 이럴 때 아무 감정 없이 머리를 향해 방망이나 골프채를 휘두를 수 있을까? 하긴 날마다 TV 뉴스에 나오는, 엄마가 아이를 학대하거나 직장 동료끼리 짓밟는 현실은 좀비 영화보다 더 섬뜩하긴 하다.
정말 좀비가 나타난다면 기자는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버텨보고 싶다. 준비된 먹을거리가 별로 없다고 해도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오래 함께 있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디 내 가족이 좀비로 변하지 않기를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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