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가 주로 다니는 조선학교는 일본 우익들의 단골 공격 대상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와 관계가 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조선학교에는 한국 국적의 학생도 많다. 일본에서 우리말과 민족 문화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태어난 곳은 일본, 국적은 한국인데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걸린 교실에서 교육을 받는 아이들. 북한과 아무 상관도 없지만, 북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신변을 걱정하며 등하교해야 하는 모순적인 처지에 놓인 아이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재일동포 3세 소설가 최실의 ‘지니의 퍼즐’은 조선학교를 다녔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장편소설이다. 6월 군조(群像)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일본 최고 권위인 아쿠타가와(芥川)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소설 속 주인공 박지니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다. 하지만 일본 초등학교를 다니다 동급생으로부터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조센진(한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라는 말을 듣고 중학교를 조선학교로 진학한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도쿄에서 가장 큰 조선학교에 다니게 된 지니.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밖에 못 하지만 교내에서 일본어는 금지다. 주인공을 배려해 당분간 일본어로 수업이 진행되면서 이를 못마땅해하는 학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그러던 중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학교 측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등교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지만 지니는 친구의 부주의로 이를 전달받지 못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조센진은 더러운 생물’이라는 폭언과 함께 폭행과 성추행을 당한다.
충격으로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던 지니는 ‘작은 혁명’을 결심하고 학교에 간다. 그리고 누구도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그냥 그 자리에 있던 것,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구도 없애지 못했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벽에서 떼어 운동장에 내던진다. 그러고 이후 정신병원을 거쳐 미국으로 가지만 여전히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찾지 못해 방황한다.
줄거리만 보면 재일동포라는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안타까운 사연이다. 조선학교에 다니던 중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한 것 등은 저자가 겪은 에피소드다. 하지만 작가는 경쾌한 문체와 섬세한 심리묘사를 더해 보편적인 성장소설로 발전시켰다. 고독감 속에서 세상과 투쟁하는 사춘기 소녀의 좌절과 절망, 분출하는 에너지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소설이 그리는 모순적 상황을 한층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 북한으로 돌아간 주인공 할아버지의 편지다.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북송선을 타고 고국에 돌아간 할아버지는 첫 편지에서 ‘북한은 아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다음 편지를 기다리지 말고 나를 잊어 달라’고 말한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지니는 절규한다. 눈을 돌리고 싶지 않다고, 현실을 직시하고 싶다고.
소설은 출간 직후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한다는 호평을 받으며 신인작가로는 이례적으로 2만5000부를 찍었다. 유명 작가인 나카지마 교코(中島京子)로부터 ‘틀림없는 걸작’이라는 호평도 받았다. 작가는 출간 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는 것이 서툰 아이들, 자신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