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32>긴 여름, 우리들의 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6일 03시 00분


외젠 부댕, ‘도빌의 바닷가’.
외젠 부댕, ‘도빌의 바닷가’.
외젠 부댕(1824∼1898)은 바다와 인연이 깊은 화가입니다. 프랑스의 어촌 옹플뢰르에서 태어나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이후 대도시에 살 때도 해변을 수시로 찾았고, 바다 인근 마을에서 숨을 거두었지요.

화가는 인상주의 미술가답게 풍경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자연 경치보다는 휴양지 풍광에 주목했지요. ‘도빌의 바닷가’는 화가의 이런 관심이 반영된 그림입니다. 파리 인근 해변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습니다. 여가 생활에 대한 당대인들의 관심이 확산되던 때였지요. 도빌의 경관이 바뀐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평범한 바닷가 마을에 요트 선착장과 폴로 경기장이 들어섰고, 카지노와 경마장도 문을 열었습니다. 숙박업소가 세워지고, 바닷물의 의학적 효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대중 목욕 시설도 마련되었어요.

그림 속 고급 휴양지는 파리 부유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곳입니다. 겨우내 한산했던 동네는 더운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쳤지요. 정장에 모자로 격식을 갖춘 남자들과 드레스에 꽃과 베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로 멋을 낸 여자들로 도시가 북적였어요. 휴식과 치료를 목적으로 바다를 찾은 휴가객들은 그림에서처럼 해변을 거닐거나 바다 구경 삼매경에 빠졌어요.

그림 속 날씨가 나쁘지 않아 다행입니다. 저 멀리 수평선까지 시야가 탁 트였군요. 그림 속 지역은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악명 높았거든요. 그런데 화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날씨에 예술적 자극을 받았습니다. 변화무쌍한 비와 바람, 안개와 햇빛을 풍성하고 부드럽게, 신선하고 인상적으로 캔버스에 담아내려 애썼지요. 결국 화가는 하늘의 미묘한 상태를 섬세하게 표현해 내 ‘하늘의 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어요.

여름과 관련된 그림들을 컴퓨터로 살피던 중이었습니다. ‘진짜 시원해 보인다.’ 바다를 그린 모니터 안 풍경화를 보며 아이들이 감탄합니다. 그제야 바쁜 나 때문에 폭염과 집 안에 갇힌 아이들 눈치가 보였습니다. 욕조에 물이라도 받아 줄까 물으니 물놀이용 공까지 재빨리 준비합니다. 간식을 가지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아이들 성화에 나도 욕조에 발을 담갔습니다. 땀도 미안함도 잦아들어서일까요. 화가의 그림에만 있는 드넓은 바다와 쏟아지는 햇살이 크게 부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들 현실에만 있는 수박 모양 공과 갓 쪄낸 옥수수가 살짝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외젠 부댕#도빌의 바닷가#인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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