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순종 어차와 오얏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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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어차인 1918년식 캐딜락. 원 안은 어차 문에 도금으로 장식한 대한제국의 상징 오얏꽃 무늬.
순종 어차인 1918년식 캐딜락. 원 안은 어차 문에 도금으로 장식한 대한제국의 상징 오얏꽃 무늬.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들어온 것은 1900∼1901년경으로 추정된다. 초창기 자동차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미국인 버턴 홈스가 쓴 기행문에 ‘1901년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여행했다’는 내용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대략 이즈음일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순종 황제 부부의 어차(御車)가 있다. 순종이 탔던 1918년식 캐딜락(미국 GM사 제작)과 순정효황후가 탔던 1914년식 다임러(영국 다임러사 제작)다. 현재 전 세계에 캐딜락 1918년식 차종은 20대, 다임러 1914년식 차종은 3대만 남아 있다고 한다. 순종 부부 어차는 국내에 현존하는 자동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이 어차들을 언제 어떻게 들여왔는지, 순종 부부가 어떻게 타고 다녔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어차의 제작연도나 상황으로 보아, 순종은 1920년대에 이 캐딜락을 탔을 것이다. 1926년 순종은 세상을 떠났고, 이 어차는 창덕궁에 보관되어 왔다. 세월이 흘러 차에는 녹이 슬고 부품은 훼손되어 갔다.

더 이상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1997년 수리 복원에 들어갔다. 차의 외양 부분은 영국의 고(古)자동차 전문 복원업체인 윌대사에서, 엔진과 섀시 부분은 현대자동차가 맡았다. 수리 복원은 2001년 마무리됐다. 복원을 마치면 이 차들을 실제로 운행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에 따라 이 계획은 접어야 했다.

순종 부부 어차는 초창기 자동차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일단 외형이 이국적이고 고풍스럽다. 근대기를 다룬 영화에 나올 법하다. 차체는 철제가 아니라 목제이고 차체 외부는 칠(漆)로 도장을 했다. 내부는 황금색 비단과 고급 카펫으로 꾸몄다. 문에는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이화·李花) 무늬를 도금으로 부착했다. 오얏꽃 무늬로 보아 주문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얏꽃을 붙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때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지금 고궁박물관에서 만나는 순종 어차는 신차처럼 깨끗하다. 수리하고 복원한 것은 좋았는데 너무 깨끗하다 보니 시간의 흔적, 식민지의 상흔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약간 빛바랜 모습으로 복원했으면 어땠을까. 금빛 오얏꽃의 번쩍거림이 오히려 식민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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