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아옌데는 ‘영혼의 집’ 등 많은 소설에서 유약한 여성이 아닌 강한 집념을 보이면서도 화해와 포용을 추구하는 여성상을 선보인다. 동아일보DB
《제6회 박경리문학상의 세 번째 후보는 칠레 작가 이사벨 아옌데(74)다.
그는 소설 ‘영혼의 집’과 ‘운명의 딸’, ‘세피아빛 초상’으로 이어지는 ‘여성 3부작’에서 상처 많은 세월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소설을 통해 칠레 현대사의 아픔을 들춰내면서 이를 온몸으로 극복해 가는 여성들을 그려낸다.
평론가이자 고려대 명예교수인 김승옥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아옌데의 첫 소설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영혼의 집’을 소개한다.》
이사벨 아옌데의 장편소설 ‘영혼의 집’(사진)은 대지주이자 금광으로 거부가 된 보수당 상원의원을 중심으로 한 4대에 걸친 여인들의 민주화 투쟁의 기록이다. 가부장적인 남성의 횡포와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여자로서 짊어진 ‘굴레’를 극복하고 자유를 쟁취하고 민주화를 이룩하려는 주인공들을 통해 칠레의 고난의 현대사를 그린 대서사시다.
트루에바 상원의원은 거의 모든 저개발 국가에서 흔히 등장하는 가부장적인 폭군이다. 황무지 같은 땅을 혼자 개간하면서 무지한 농민들이 잘살도록 집을 개량하고 농토를 일으키고 학교를 세우는, 노력형의 인간이다. 그러나 그가 농민을 잘살도록 이끄는 것은 그들에게 동정적이거나 이해심을 지녀서가 아니다. 그는 “이곳에서 필요한 것은 강한 정부, 강한 농장주야. 우리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잖아”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주의자들을 향해 “모범적인 농장이 된 트레스 마리아스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손녀딸이 계급투쟁에 대해 떠드는 소리에 동의할 수가 없다. … 그들에게 나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늙은 신부가 ‘지주란 소작인들에게 작은 벽돌집이나 우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존엄성을 살려주는 데 있는 것’이라고 하면, 트루에바는 이를 두고 소작인들을 선동하기 위한 볼셰비키 사상일 뿐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농민은) 책임감이 없고 무식하며… 제 엉덩이도 닦을 줄 모르는데 투표권은 무슨 얼어 죽을. … 내가 이곳에 와서 질서와 법을 세우고, 일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우쳐줄 필요가 있었어….”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보이는 이런 남성과는 달리, 부드럽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해방된 여성들이 존재한다. 이 여성들의 첫 세대는 순종적이고 소극적인 저항운동을 하지만 다음에 오는 세대는 힘차게 행동하고, 저항하다가 난파하기도 하지만 종내 승리한다. 그 승리는 적을 쓰러뜨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상원의원의 손녀인 알바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강간당한다. 그렇게 낳은 아이가 애인의 아이인지 쿠데타의 도구로 전락한 특수경찰의 아이인지 모르지만, “내 딸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면서 “피를 흘리는 복수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화해와 용서를 해야 한다”는 독백을 한다.
작가는 소설 속 알바의 수기를 통해 이 소설을 쓴 이유를 간접적으로 고백한다. “아무도 모르게 겪고 있는 그 끔찍한 고통을 언젠가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써보라고 한다. 평온하고 정돈된 삶 한편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그 참상을 알리라고 한다.”
자신의 삼촌이자 지구상에서 혁명이 아닌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최초로 선출된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소설에서는 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군사 쿠데타에 의해 대통령 궁에서 살해됐다. 칠레의 현대사는 그만큼 상처가 크지만 작가 이사벨 아옌데에 의해 화해와 용서를 모토로 한 서사시로 재탄생했다.
이 소설의 묘사는 그로테스크하고 바로크적이며, 환상적 리얼리즘이 깃들어 있다. 고문 장면을 표현할 때는 읽는 독자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 국가의 굴곡진 현대사를 그려내면서 화해와 용서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박경리 문학정신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이사벨 아옌데는…
1942년 페루 리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재혼한 뒤 외교관인 의붓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성장했다. 17세 때부터 칠레 산티아고에 살면서 저널리스트, 극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삼촌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뒤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베네수엘라로 망명한 뒤 처음으로 쓴 소설이 ‘영혼의 집’이다. 비평가들에게 완벽하다는 극찬을 받은 이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환상적 리얼리즘과 페미니즘을 구사하면서 칠레의 극적인 현대사를 헤쳐 나가는 여성들을 묘사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살고 있다. 국내에는 ‘영혼의 집’ ‘세피아빛 초상’ ‘야수의 도시’ ‘소인족의 숲’ ‘황금용 왕국’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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