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잡지 ‘릿터’ 초판이 2주 만에 매진됐다. 출간 때 찍은 5000부가 다 나가면서 재인쇄에 들어갔다. 릿터는 계간 ‘세계의문학’이 지난 겨울호로 종간한 뒤 민음사가 새롭게 선보인 문예지다. 고무적인 건 정기구독 신청자가 600여 명에 이른다는 소식이다.
세계의문학 종간 당시 정기구독자가 30명이었음을 떠올리면 600이라는 숫자는 기록적이다. 더욱이 정기구독 신청자 중 500여 명이 잡지가 출간되기 전 제호와 디자인만 공개된 상태에서 구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잡지 편집을 맡은 서효인 민음사 문학팀장에게 이 뜨거운 반응의 근거를 물었다. “‘창간발’이라는 게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는 “문예지에 대한 수요가 그 정도는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문학이 위축돼 보이는 21세기에도 문학잡지를 보려는 독자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릿터 창간호에는 그룹 샤이니의 종현 인터뷰 같은 대중 친화적인 글도 있지만 시인과 소설가들의 신작을 싣는 기존의 문예지 콘텐츠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격월간 ‘악스트’는 어떨까. 악스트 역시 매호 1만 부 안팎의 안정적인 판매 부수를 유지하고 있다. 정기구독자는 1500명인데 정기구독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 “잡지에 대한 독자의 관심은 느는 추세”라는 게 백다흠 편집장의 얘기다. 지난달에는 번역가 노승영 씨가 악스트 편집위원으로 합류했다. 그간 문학잡지에서 소외됐던 번역문학을 문예지의 울타리 안쪽으로 끌어들인다는 의도다. 편집진을 새롭게 꾸리면서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이래저래 새로운 잡지의 시대가 열릴 참이다. ‘문학과사회’는 올 가을호를 혁신호로 선보인다. 제호와 판형은 그대로 가져가되 기존의 600쪽 안팎의 두꺼운 잡지가 아닌, 분량을 줄인 잡지 두 권을 함께 내놓는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한 권은 특집 원고와 신작 작품을 소개하는 기존 잡지 형식을 따르지만, 다른 한 권은 주제에 따른 산문과 인터뷰 등 독자가 부담 없이 읽을 만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출판사 창비가 기획하는 새 잡지도 이르면 가을에 선보인다. 시와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 만화 등 다양한 문화 장르를 아우른다.
문예지는 한때 거대담론의 창구였고 학회의 스터디 교재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새로운 독서 인구의 요구에 맞춰 얇아졌고 보기 편해졌으며 구성도 가뿐해졌다.
서효인 팀장은 릿터 창간 간담회에서 “기존의 문학권력 논란이 작가에게 초점을 맞춰 빚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독자에게로 초점을 이동시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형식은 사뭇 달라졌지만 콘텐츠가 ‘문학적’이라는 건 다르지 않다. 새로운 세대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는 의미다. 이들과 함께 변화하는 문학잡지가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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