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책을 좋아한다. 나 자신에게 오독과 오해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레너드 서스킨드의 ‘블랙홀 전쟁’(사진)은 내 오독과 오해의 결정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이론물리학 교수인 저자는 “블랙홀에 들어간 정보는 사라진다”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주장을 반박했고 기나긴 연구 끝에 승리했다. 호킹도 이를 인정했다. 저자는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 비유를 들어 블랙홀의 놀라운 특성에 대해 설명한다. 아파트의 이중창처럼, 어렵게 엿본 우주의 일면은 몹시 황홀하면서도 기괴했다.
미래의 어느 날, 황제는 과학지식으로 세상을 어지럽힌 물리학자 스티브에게 ‘블랙홀 추락형’을 언도한다. 그는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스티브가 블랙홀에 내던져지는 것을 관람한다. 황제는 스티브의 온몸이 녹아내리고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다.
한데 블랙홀에 내던져진 스티브는 아무런 변화도 감지하지 못한다. 멀쩡하게 제명을 다 살고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황제는 스티브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정작 스티브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에 의하면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서스킨드의 블랙홀 상보성에 의하면 두 사건은 동시에 참이다. 스티브는 죽었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것이다. 이 결론은 공상이 아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적용하면 그렇단다. 우리의 일상에서 삶과 죽음은 양립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삶과 죽음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왜 내가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가? 그건 오류를 범하고 싶어서이다. 과학적 사실에서 인간적 가치로 점프해서는 안 된다는 오류 말이다. 우주적 관점에서는 삶과 죽음조차 동시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면, 우주의 일부인 지구 표면에 붙어사는 미미한 존재인 인간은 화해 가능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의 차이는 서로가 진실의 일부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면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달 내내 감기에 걸려 링거를 달고 살았다. 그런 날 보고 누군가는 ‘정신력이 약하다’ ‘엄살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볼 땐 별일 아니었겠지만 나는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 사람이 되어 보기 전에는 누군가의 고통을 함부로 폄하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간단한 교훈을 말하자고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블랙홀 상보성에 의존하는 내게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과학에서 이런 엉뚱한 교훈을 얻는 글에 대해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부디 어느 분이라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면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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