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도심 속 분수대를 뚫고 나타난… 고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0일 03시 00분


◇파란 분수/최경식 지음/48쪽·1만3000원·사계절

무더위로 온통 찌건 말건, 혹한에 손발이 꽁꽁 얼어도 아이들은 즐겁습니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라도 재미나는 일을 찾아내지요. 놀이기구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공터에서도 마른 작대기 하나로 온종일 노는 존재가 아이들입니다.

지금은 무엇이든 너무 많아서 더 무료하지요. 그림책 속 아이도 강아지를 친구 삼아 별것 없는 마른 분수대 주위를 맴돌고 있어요. 노는 것도 같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해요. 시간과 공간의 설정이 모호합니다. 낮과 밤이 분명하지 않고, 아파트 단지 안이나 동네 어디쯤인 것 같은데 비현실적으로 분수대가 있어요.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있지만 무관심합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 듯 글로 설명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이상한 여름, 사뭇 다른 날씨, 물이 나오지도 않는 분수에서 나는 바다 냄새.

이후로는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림만을 읽어야 하지요. 본격 판타지 공간으로 가기 직전의 고요한 긴장감이 전해집니다. 그러다 아이에게 집중된 화면이 분절되더니 바로 땅이 갈라지며 분수대를 등에 업은 고래가 나타나 아이와 강아지를 태운 채 밤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펼친 세 장면으로 하나, 둘, 셋 하듯 순식간에 하늘 멀리 까마득해졌다가 곧장 풍덩 바다로 빠져들어요. 그 속도감만으로도 시원합니다. 돌아온 자리에는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네요.

현관으로 들어오는 아이 발끝에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방 안 아이가 그린 그림 속에 고래와 분수가 보여요. 벗어놓은 옷 틈에서 나온 불가사리는 다시 한번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버립니다. 과하지 않은 연출과 성실한 드로잉으로 선보인 작가의 첫 번째 책이에요. 보고 또 봐도 시원합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파란 분수#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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